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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나라 속의 거울 이미지


"거울 나라의 앨리스(Through the Looking Glass)"는 거울의 대칭과 역전에 대한 농담으로 가득차 있는 이야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삽화 속에 거울 나라의 비전이 드러나 있지 않다면 그야말로 이상한 일일 것이다. 존 테니얼의 삽화는 종종 캐럴의 텍스트에 있는 것 이상의 이야기를 들려주곤 하는데, 여기서도 예외는 아니다.

그 가장 대표적인 예는 앨리스가 벽난로 위의 거울을 통과해서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장면이다. 테니얼은 이 장면을 앨리스가 거울 속으로 들어가는 광경과 거울 밖으로 나오는 광경으로 나누어 한 쌍의 삽화로 그렸다. 이 두 장의 삽화는 (앨리스를 제외하고) 서로 거의 완벽하게 대칭을 이룬다.

클릭하면 큰 그림으로 <거울 나라의 앨리스>의 스탠다드 에디션에서는 대개 이 두 개의 삽화가 책 한 장의 앞 뒤에 오도록 배치되어 있다. (시공사판 앨리스에서도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러면 물리적인 책장이 바로 앨리스가 뚫고 들어가는 거울면이 된다.

테니얼은 우리가 거울 밖에서 볼 때는 가려져 보이지 않던 부분에 대해 만화가다운 상상력을 발휘하였다. 벽난로 위에 거울을 등지고 놓인 시계와 화병이 거울 속에서는 왠지 벌레 씹은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보이겠지? 그보다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벽난로 아치에 달린 장식 무늬도 두 번째 그림에서는 혀를 삐죽 내밀고 있다. 테니얼은 이 삽화의 거울 이미지에 어찌나 충실했던지 자기의 서명까지도 뒤집어 놓았다. (첫번째 그림에서는 좀 흐릿하게 보이지만 오른쪽 아래, 두 번째 그림에서는 왼쪽 아래에 있다.)

앨리스의 모습으로 말하자면, 이 그림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앨리스는 거울을 통과한 후에도 좌우가 뒤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이다.[주1] 둘째는, 이 삽화는 두 장으로 되어 있지만, 앨리스의 자세로 미루어 볼 때 시간적으로 같은 순간을 다른 시점에서 찍은 샷이라는 사실이다. 두 그림은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는 앨리스를 하나는 뒤에서, 하나는 앞에서 보고 그린 그림이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해서, 앨리스는 두께가 없는 거울면(혹은 책장면?)으로 이루어진 이 그림에서 유일하게 3차원성을 갖는 피사체가 된다.

이와 비슷한 주제의 반복이 트위들덤과 트위들디가 등장하는 장에서 다시 나타난다. 쌍동이 트위들덤과 트위들디는 그 자체로 거울의 대칭을 나타내는 캐릭터들이다. 거울 대칭 놀이는 그들의 집으로 가는 길을 가리키는 두 개의 표지판에서부터 시작된다.

TO TWEEDLEDUM'S HOUSE : TO THE HOUSE OF TWEEDLEDEE

앨리스는 이 표지판을 보고 얼마 가지 않아 트위들덤과 트위들디와 맞닥뜨린다.

클릭하면 큰 그림으로 그들은 어깨동무를 하고 나무 밑에 서 있었다. 한 남자의 옷깃에는 '덤'이라고 수놓아져 있고, 또 한 남자의 옷깃에는 '디'라고 수놓아져 있어서 앨리스는 금방 누가 누구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앨리스는 중얼거렸다.
"저 사람들 등 쪽 옷깃에는 둘 다 '트위들'이라고 쓰여 있을 거야"


트위들덤과 트위들디가 어깨동무를 하고 서 있는 삽화를 보면 마치 종이인형처럼 평면적이어서 반으로 접으면 딱 맞아들어갈 것 같다. 역시 서로가 서로의 거울 이미지임을 바로 알 수 있다. 만약 테니얼이 여기에 좀더 세심함을 발휘했더라면 트위들덤의 왼쪽 옷깃에 수놓아진 'DUM'을 오른쪽으로 옮겨놓아 대칭을 맞추었을지도 모르겠다.

클릭하면 큰 그림으로테니얼은 조금 뒤에서 트위들덤과 트위들디의 거울 이미지를 조금 은밀한 방식으로 한번 더 활용한다. 트위들덤과 트위들디가 서로 싸우려고 무장을 갖추는 장면의 삽화를 자세히 보면, 이 쌍동이 형제는 서로가 거울에 비친 모습을 하고 있다. (손가락 모양과 옷자락이 뒤로 끌린 모양에 주의를 기울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는 둘 사이의 대칭면이 책의 지면에서 어슷하게 비껴져 있기 때문에 기계적 대칭이 쉽게 눈에 띄지 않을 뿐더러, 두 피사체가 보다 입체감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와 비슷한 구도는 고전 회화에서도 종종 발견되는데, 특히 수학적 구도와 양감을 중시한 르네상스 회화들 중에 많다. 라파엘로는 <갈라테아의 승리>에서 이러한 기법을 대가다운 능숙한 솜씨로 구사하였다. 하늘에서 갈라테아를 겨누고 있는 세 명의 아기 천사 중 좌우의 두 명은 서로 대칭되는 자세를 하고 있다. 하지만 시선의 방향이 화살의 방향을 따라 자연스럽게 중앙의 갈라테아로 연결되기 때문에 이 점은 쉽게 인지되지 않는다. 그림 양 옆 끝에서 뿔나팔을 불고 있는 인물들의 동작도 서로 비스듬한 대칭관계에 있지만 이 역시 금방 눈에 들어오지는 않는다. 이 그림은 얼핏 봐서는 혼란스럽게 보이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모든 주변 인물들은 이렇게 전후, 좌우로 서로 대응관계에 있으면서, 서로의 동작을 모방하고 변주하며 전체의 구도에 이바지하고 있다.

얘기가 샌 김에 한 발 더 나가 보자. 이러한 수법을 보다 노골적으로 드러낸 그림이 그보다 한 세대 앞서 그려진 그림인 폴라이우올로의 <성 세바스찬의 순교>이다. 이 그림에서 성 세바스찬을 겨눈 여섯 명의 궁수들은 척 보기에도 둘 씩 세 쌍이 동작의 짝을 이루고 있다. 뒤쪽 두 명, 앞쪽 양 끝으로 두 명, 그리고 앞쪽에 수그리고 있는 두 명. 엄밀히 보면 대칭은 아니고, 한 동작을 취하고 있는 인물을 다른 방향에서 보고 반복하여 그린 것이다. 실제로 조각가 출신이었던 이 화가의 작업실에는 활쏘는 모습을 한 작은 모형 조각이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한 폭의 그림 안에서 한 피사체의 동작을 여러 시점에서 반복, 모방하는 수법은 2차원의 평면에 3차원적 느낌을 불어넣고, 대칭적 구도의 균형을 꾀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서양 미술에서 대칭적 형상은 그 자체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즉 모든 대칭에서는 "중심"이 있으며, 대칭의 기준이 되는 위치에 있는 것은 항상 주변의 것보다 우위에 있다. (앞의 두 그림에서도 모든 대칭은 중앙의 인물들을 강조하기 위한 수단이다. 많은 종교화에서는 그 자리를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가 차지했다.) 이것이 대칭이 내포하는 위계적 의미이다.

그런데 루이스 캐럴의 대칭에는 중심이 텅 비어 있다. 앨리스는 처음에 두께나 무게가 없이 하늘거리는 "중심"의 사이를 천막을 찢듯 뚫고 나온다. 앨리스는 정상과 역전 사이에서 어지러워하다 결국 하얀 여왕과 붉은 여왕 사이에서 여왕의 왕관을 쓰고 중심의 자리에 등극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칭의 균형을 깨부수어 버리고 일상으로 돌아오게 된다. 믿거나 말거나... 정말이지, 나도 이 얘기가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다.


by Dormouse



참고자료

<The Annotated Alice> by Martin Gardner, 2000
<The Story of Art> by E.H. Gombrich,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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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목록
+ 앨리스 책의 삽화가, 존 테니얼
+ 거울 나라 속의 거울 이미지
[주1] 사실 앨리스가 거울 나라에서 계속해서 혼란을 겪는 것은 이 때문이다. 거울을 통과하면서 앨리스 자신도 좌우가 뒤바뀌었더라면, 거울 속에서 일어나는 역전 현상을 아예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갈라테아의 승리:클릭하면 큰 그림으로

성 세바스찬의 순교:클릭하면 큰 그림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