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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나크 사냥 - 여덟 소절의 사투>


"But oh, beamish nephew, beware of the day,
If your Snark be a Boojum! For then
You will softly and suddenly vanish away,
And never be met with again!"

- 루이스 캐럴, <스나크 사냥>

["스나크 사냥" 보기]

스나크 사냥 초판 표지그림 루이스 캐럴이 지은 <스나크 사냥 - 여덟 소절의 사투(The Hunting of the Snark: An Agony, in Eight Fits)>는 총 여덟 장으로 구성된 넌센스 시이자 이야기 시입니다. 루이스 캐럴은 <앨리스> 말고도 평생 동안 여러 편의 소설과 시를 발표했는데, 이 시는 그 중에서 아직까지도 가장 널리 읽히고 있는 작품입니다.

이 시를 구상할 무렵인 1874년 루이스 캐럴은 42살이었습니다. 이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발표하고 유명인사가 된 다음이었죠. 그는 <스나크 사냥>을 처음 착상하던 순간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느 밝은 여름날 산중턱을 걷고 있을 때 갑자기 다음과 같은 한 구절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 "스나크는 부줌이었으니까.(For the Snark was a Boojum, you see)" - 그 말이 무슨 뜻인지는 나도 몰랐다. 지금도 모르는 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나는 그 구절을 적어 두었다. 조금 시간이 흐르자, 나머지 구절들이 머리 속에 저절로 떠올라서 그 구절을 마지막 행으로 삼은 짧은 시가 하나 완성되었다. 그리고 점차 거기에 살이 붙어, 일이 년 후에는 그 시를 마지막 연으로 삼은 하나의 장편시가 완성되었다."

이렇게 탄생한 <스나크 사냥>은 1876년 부활절을 앞두고 출판되었습니다. <스나크 사냥>의 삽화를 그린 헨리 홀리데이는 당대의 화가이자 조각가로, 훗날 교회 등의 스테인드글래스 디자이너로 유명해진 사람입니다. 그는 한 칼리지 교회의 벽장식 조각을 해 주러 옥스포드를 방문했을 때 도지슨을 처음 만나게 됩니다.

홀리데이가 그린 삽화는 확실히 존 테니얼의 앨리스 삽화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이 정신나간 이야기를 지나칠 정도로 꼼꼼하고 충실하게 묘사하고 있다 보니 제법 기괴하고 초현실주의적인 분위기가 납니다. 여기에는 몸과 비례가 맞지 않게 크게 그려진 두상도 한 몫 하죠. 특히 마지막에 등장하는 "부줌(Boojum)"의 삽화는 한 번 더 들여다 볼 가치가 있습니다.

<도지슨 문학 안내서(Handbook of the Literature of Rev. C.R. Dodgson)>에 보면 <스나크 사냥>을 일러, "있음직하지 않은 승무원들이 터무니없는 사냥감을 찾아 헤매는 불가능한 여행에 대한 이야기"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질문은 뭐니뭐니 해도 "도대체 스나크의 정체가 뭘까?" 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시에서 탐험대원(?)들이 쫓는 스나크는 한번도 그 속시원한 정체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이 책이 나오고 난 뒤 루이스 캐럴 자신에게도 비슷한 질문이 꽤 많이 쏟아졌던 모양입니다. 여기에 대한 루이스 캐럴의 대답은 "나도 몰라요" 이거나 잘 나가봐야 "스나크는 부줌입니다." 였지요. 그렇다면 "부줌"의 정체는 또 뭘까요? "스나크는 부줌이다"라는 명제는 어딘지 회귀함수에서 추출할 수 있는 재귀적 명제(이를테면 "GNU는 유닉스가 아니다"같은)을 연상케 하는 구석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스나크 사냥 이야기를 인생사나 사회상에 대한 알레고리로 받아들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스나크가 사람들이 좇아 헤매는 물질적 부나 사회적 신분 상승을 상징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부줌은 그 눈먼 탐욕의 결과로 맞게 되는 부정적 파국을 의미하구요. 어떤 이들은 더 구체적으로, 이 이야기가 불안정한 모험적 사업(요즘말로하면 벤처 사업)과 거기에 참여한 사람들을 대변한다고 보기도 했습니다. 대공황기에는 <스나크>가 비즈니스 전반에 대한 풍자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등장인물들은 대공황기의 각 경제주체들을 의미했고, 부줌은 물론 대공황 자체를 상징하는 것이었죠. 그렇다고 <스나크>가 꼭 사회 풍자로만 받아들여진 건 아닙니다. 페르디난드 스콧 쉴러라는 철학자는 이 작품을 절대 정신을 찾아 헤매는 헤겔주의 철학자들에 대한 풍자로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마틴 가드너도 <스나크>를 현대사회에 대한 철학적인 메시지로 받아들였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부줌은 한 마디로 설명할 수도 형용할 수도 없는 대상입니다. (로지 잭슨 식으로 말하자면 "기표만 있고 기의는 없는" 대상이겠죠. *) 그 앞에 선 모든 인간은 말그대로 "무(無)"로 환원되어 버리고 맙니다. 순수한 무 앞에 직면한 인간은 죽음의 공포, 아니 죽음 이상의 실존적인 공포를 느끼게 됩니다.

냉전이 한창이던 60년대 초에 그런 공포를 가장 생생하게 대변하는 존재는 바로 핵폭탄이였습니다. 핵전쟁으로 인류 전체가 소멸할 수도 있는 가능성을 최초로 감지한 세대였으니까요.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승무원들은 모두 B로 시작하는 이름을 가졌는데(Bellman, Boots, Beaver, Banker, Barrister, Baker, Butcher), 가드너는 이것이 B, B, B... 하면서 파국인 Boojum!을 향해 행진하는 불길한 북소리처럼 들린다고 멋부려 이야기합니다.

21세기에 그건 아마 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겁니다. 작가가 의도한 바에 상관없이 풍부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는 건 넌센스만의 강점이죠. 하지만 "부줌"이 암시하는 실존적인 의미는 오늘날에도 유효합니다.

"스나크 사냥"의 원문은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by Dormouse


참고자료

Introduction by Martin Gardner, in <The Hunting of the Snark> Penguin Classics, 1962
Carroll, Lewis. The Hunting of the Snark: an Agony in Eight Fits Electronic Text Center, University of Virginia Libr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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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목록
+ 루이스 캐럴에 대하여
+ 인물 사진작가 루이스 캐럴 + <스나크 사냥>





















부줌






























* 로지 잭슨이 쓴 <환상성>에 보면, 많은 환상적인 문학의 공통적인 요소 중의 하나로 "기표와 의미와의 단절"을 들어 설명하는 재미있는 분석이 나온다.
그녀는 기표와 의미와의 단절을 "이름 없는 사물"과 "사물 없는 이름"의 두 종류로 나눈다.
전자에는 모파상의 "오를라", 카프카의 '오드라데크', 포우나 러브 크래프트의 공포 환상물들이, 후자에는 루이스 캐럴의 넌센스 시들, 도스토예프스키의 "보보크", 보르헤스의 "자이르" 등이 해당된다.
캐럴의 "부줌"은 여기서 "사물없는 이름"에 해당한다. "사물없는 이름은... 목적, 기호, 징표를 갖지 않는 수단들이며, 표면적으로는 가득찬 듯 하지만 실제로는 무시무시한 공허로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