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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캐럴에 대하여


"성직자와 어린소녀들을 사랑하는 남자, 판타지와 지루한 수학교수, 몽환적인 이야기꾼과 논리학자... 이 정반대되는 성향이 어떻게 양립될 수 있었을까? 바로 이 인물들의 바탕을 이루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보지 않고서는 그 점을 이해한다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다."

- 장 가텐노, <루이스 캐럴의 세계>

루이스 캐럴, 본명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Charles Lutwidge Dodgson이라는 이 호리호리하고 내성적인 이 빅토리아 시대의 수학 교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가 아니었으면 아마 역사 속으로 잊혀져 버렸을 것이다. 당대의 재능있는 수학자이긴 했지만 수학사에 이름을 남길 정도의 업적을 세운 것은 아니고, 뛰어난 인물사진가이긴 했지만 아마 사진사 연구자들에게나 관심을 끌었을 테니까.

그러나 도지슨이 그의 꼬마친구 앨리스 리델에게 주려고 쓴 앨리스 2부작은 사후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의 이름을 불멸의 존재로 만들었다. 그는 루이스 캐럴이라는 필명을 써서 수학자이자 자연인인 도지슨과 동화작가로서의 루이스 캐럴을 엄격히 구별하려고 노력했지만, 앨리스 2부작과 그 뒤에 발표한 <실비와 브루노> 등의 작품 속에는 논리적 역설을 사랑하는 수학자의 감성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은 단 몇 줄의 문장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한 복잡한 인물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그의 삶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별다른 굴곡이 없이 평온하고 유복했다. 그의 일생은(1832-1898) 흔치 않게도 '해가 지지 않는 영국'의 전성기인 빅토리아 여왕의 통치 기간(1837-1901)과 거의 일치한다.

국교회 사제의 아들로 형제들이 10남매나 되는 화목한 가정에서 태어나 안정된 어린시절을 보낸 그에게 평생의 직장이었던 옥스퍼드 대학은 더할 나위없이 적합한 곳이었다. 재능있는 사람들, 지성인들, 기인들이 모여드는 쾌적한 분위기에서 그는 수많은 사람들과 교분을 쌓았다. 65세에 약한 기관기염에 걸려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그는 지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건강을 유지했다.

그는 빅토리아 시대의 전형적인 보수주의자였고 더할 나위없이 성실한 사람이었다. 다른 이들처럼 여왕을 존경하였고, 앨리스 리델의 아버지였던 헨리 리델 학장의 개혁적인 정책에 끈질기게 반대하였다. 하지만 그는 완고한 고집불통은 아니었다. 탁월한 유머감각의 소유자이며, 어린이, 특히 소녀들에게는 최고의 친구였고, 당대의 유명인사들과도 폭넓은 친분을 맺었다. 그의 고질적인 말더듬과 수줍음 타는 성격, 성적인 미성숙함(그는 연애다운 연애조차 한번도 못해보고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다.) 등을 생각해 보면 놀라운 일면이다.

특히 예술에 대한 로맨틱한 감수성은 그의 보수적인 성격을 완화해 주었다. 그는 감상적이고 신비적인 라파엘 전파 회화에 매료되었으며 연극애호가이기도 해서, 화가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나 연극배우 엘렌 테리 등 당시의 손꼽히는 예술인들과 교분을 맺었다.

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애정을 쏟았던 친구들은 뭐니뭐니해도 어린이들, 특히 어린 소녀들이었다. 그가 어린 소녀들과 맺은 우정은 지금까지 수많은 억측과 호기심의 대상이 되어 왔다. 특히 그가 찍었던 소녀들의 누드 사진과 페도파일(아동 성애)을 연관시키는 경향이 그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는 그의 보수적이고 소심한 성격과 극히 신중한 태도, 그리고 어린이 누드에 대한 빅토리아 시대의 관념 등을 지적하고 넘어가는 데서 그치기로 한다. 빅토리아 시기의 미술에 자주 등장하는 어린이의 누드는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나 영감을 상징했다. 도지슨은 철저히 부모들의 허락과 감독 하에서만 사진을 찍었고, 그 소녀들이 자라났을 때 대부분의 누드사진들은 부모들에게 되돌려주거나 폐기되었다. 그가 찍은 누드 사진중 현재까지 남아있는 것은 단 네 점뿐이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는 인물사진에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이 점을 떠올릴 때는 당시만 해도 사진술은 아직 초기에 있었고 매우 복잡한 기술을 필요로 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는 이 새로운 표현방식에 즉각 매료되어 많은 어린 소녀들이나 유명인사를 찍은 훌륭한 사진들을 많이 남겼다.

수학자로서의 도지슨은 탁월한 업적을 남긴 것은 아니지만 형식 논리에 대한 그의 연구는 <기호 논리학Symbolic Logic>등의 저서를 통해 알려져 있다. 하지만 마틴 가드너에 따르면 그가 독보적으로 기여한 분야는 "수학 레크리에이션"이다. 그가 루이스 캐럴이라는 이름으로 출판한 픽션과 운문들, 어린 소녀들에게 보낸 편지, 일기에서는 다양한 수학 게임, 퍼즐, 논리적 역설, 수수께끼, 말놀이, 게임의 규칙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이런 수학 퍼즐들을 진정으로 즐겼으며 (어린이들이 좋아했는지는 의문이지만) 어린이들을 위한 수학 퍼즐 책도 발간했다.

그 자신은 매우 도덕적이고 보수적인 사람이었지만, 그가 꼬마친구들에게 보낸 편지나 어린이들을 위해 쓴 동화들의 내용은 교훈이나 도덕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순수한 즐거움을 위한 것이었다. 빅토리아 시대에 그런 동화는 매우 드물었으며, 루이스 캐럴의 작품은 당시의 교훈적이고 형식에 치우친 표현방식과 대조되어 아주 새롭고 기념비적인 것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은 아마도 아이들에 대한 그의 이해심 많은 사랑과 호감의 산물이었으리라.


by Dormouse



참고자료

스테파니 로벳 스토펠 <루이스 캐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만나다>
마틴 가드너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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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나크 사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