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without화폐 없는 세계는 가능하다: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경제 만들기 | 애니트라 넬슨, 프란스 티머만 (엮음) | 서해문집 | 2013년

4쪽 둘째 문단: 우리는 활동가와 학자들에게 흥미와 통찰을 주는 읽기 쉬운 책을 만들기로 했다. → 우리는 활동가와 학자들에게 흥미와 통찰을 주는 읽을 만한(readable) 책을 만들기로 했다.
(차마 ‘읽기 쉽다’고는 말할 수 없군요. 이 단어에서 배신감을 느끼신 독자 여러분께 죄송합니다;;)

62쪽 역자 주: 마르크스의 가치 법칙은 자본주의 시장 생산과 교환을 지배하는 가장 기본적인 경제 원리로, 자본주의하에서 사용 가치가 ‘사회적 필요 노동’, 즉 사회 전체에서 어떤 상품을 집합적·평균적으로 생산하는 데 드는 노동시간에 의해 결정된다는 법칙이다. → … 자본주의하에서 상품 가치가 ‘사회적 필요 노동’, 즉 사회 전체에서 어떤 상품을 집합적·평균적으로 생산하는 데 드는 노동시간에 의해 결정된다는 법칙이다.

66쪽 인용문: 중앙집중적 계획은 사회주의 사회의 존재 방식이고 그 결정적 특징이며, 인간 의식이 마침내 경제를 그 목표–공산주의 사회 틀 안에서 인간의 완전한 해방–를 향해 경제를 종합하고 인도하는 데 마침내 성공하는 지점이다.

77쪽 둘째 문단: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사회관계의 국제적 확대’가 절대다수인 상황에서는 생활조건을 개선하기보다 오히려 비참해졌다고 맹비난해왔다. →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사회관계의 국제적 확대’가 세계인들 절대다수의 입장에서 볼 때 생활조건을 개선하기보다 오히려 비참하게 만들었다고 맹비난해왔다.

111-112쪽: 생태적 전통에 반대하는 미제스와 하이에크 주장의 약점은 좀 더 보편적으로 사회주의와 관련이 있다. → 생태적 전통에 반대하는 미제스와 하이에크 주장의 약점은 사회주의자들에게 더 보편적인 유효성을 띤다.

112쪽:
빈 학의 핵심 중 한 명인 오토 노이라트다. → 빈 학의 핵심 중 한 명인 오토 노이라트다.

이 논쟁에는 흔히 상정되는 것보다 더 많은 모순이 존재한다. → 이 논쟁 흔히 상정되는 것처럼 그렇게 연속적이지 않다.

113쪽:
두 번째 논쟁은 경제 내 서로 다른 행위자들 가운데 지식이 산된 상태에서 계획의 가능성에 대한 것이었다. → 두 번째 논쟁은 경제 내 서로 다른 행위자들 가운데 지식이 산된 상태에서 계획의 가능성에 대한 것이었다.

‘고차적(higher order)’ 생산재와 관련된 합리적인 경제적 의사결정은, → 단순히 개인적 차원을 초월한 ‘고차적’ 생산재와 관련된 합리적인 경제적 의사결정은,

120쪽: 데카르트적 합리주의는 사회 내 지식의 분업, 숙련에 내재된 실용적 지식의 확산, 특히 국지적 시공간에 맞는 노하우를 인식하지 못한다. → 데카르트적 합리주의는, 사회 내의 지식이 분산되어 있으며 특히 국지적 시공간에 적용되는 실용적 지식이 숙련과 노하우에 내재된 채로 흩어져 있음을 인식하지 못한다.

121쪽: 물론 이 논쟁에서 사회주의 측에 대한 시각을 공유하는 이는 노이라트뿐만이 아니었다. → 물론 이 논쟁에서 사회주의 측에 대한 이런 시각을 공유하는 이는 노이라트뿐만이 아니었다.

123쪽: 노이라트의 모델에서 중요한 부분은 이 모델이 연합의 융성과 교환 관계의 융성 사이에 뚜렷한 구분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 노이라트의 모델에서 중요한 부분은 이 모델이 연합의 융성과 교환 관계의 융성 사이에 뚜렷한 구분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연합체란 가족, 지역 사회, 일터, 정당, 교회, 국제 사회와 국가를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며, 개인은 복수의 연합체에 동시에 소속된다. 노이라트가 옹호하는 계획 경제에서는 계획 기능과 권력이 국가에 집중되지 않고 이런 복수의 중첩된 연합체들 사이에 분산된다. 저자는 오늘날 통용되는 ‘시민 사회’라는 말이 이런 연합체들과 민간의 시장 질서를 흐릿하게 통칭하는 개념이 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옮긴이]

124쪽 아래 인용문: 맨체스터 자유주의는… 공동체와 길드 운동을 백안시했다. → 맨체스터 자유주의[19세기 영국 맨체스터 학파가 주장한 극단적 자유방임주의–옮긴이]는… 공동체와 길드 운동을 백안시했다.

4장 전체: 사회주의화사회화
4장에서, 노이라트가 바이에른에서 추진한 socialisation의 번역을 놓고 ‘사회주의화’와 ‘사회화’ 사이를 한 일곱 번 정도 오가다가 결국 ‘사회주의화’로 했습니다만, 영 개운치 않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보면 ‘사회화’는 ‘1)인간의 상호 작용 과정, 2)인간이 사회의 한 성원으로 생활하도록 기성세대에 동화함. 3) 사적인 존재나 소유를 공적인 존재나 소유로 바꾸어 감.’이라는 여러 가지 뜻이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의 ‘사회화’는 세 번째 뜻인데, ‘사회주의화’로 번역한 것은 1) ‘사회화’의 여러가지 뜻이 혼동될 여지가 있고 2) 특히 이 글에서 ‘사회화’가 무엇의 사회화인지(예를 들어 ‘생산의 사회화’, ‘가사 노동의 사회화’ 등) 뚜렷이 명시되지 않은 채 범용적인 단어로 쓰여 더더욱 혼동의 여지가 있으며 3) 노이라트가 바이에른에서 ‘사회화’ 계획을 통해 사회주의를 수립하려 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회화’라는 단어가 더 적합하다는 생각 쪽으로 기웁니다. 특히 126쪽 인용문과 그 아랫부분에서, ‘사회주의화 프로그램은 사회주의, 연대주의, 공산주의를 동시에 실현하려고 한다’는 내용을 보면 ‘socialisation’이 더 광범위하고 일반적인 의미를 띠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30쪽: 쿤의 과학사회학 → 쿤의 이론으로 촉발된 과학사회학

131쪽: 이 문제에 대한 노이라트의 대응은 과학 언어를 (특히 물리학의 언어로) 통일하자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 이 문제에 대한 노이라트의 대응은 과학 언어의 통일,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물리주의(physicalism)를 옹호한 것이었다.
참고로, 존 오닐은 다른 글(‘Socialism, associations and the market’ 140쪽 주석1번)에서 이런 노이라트의 접근 방식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지식의 민주화나 학제적 문제 해결은) 용어를 바꾸어서 해결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다.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과학을 민주화시킬 수 있는 길은 없다. 그보다도 이것은 과학자들의 주장을 시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제도적 여건을 유지하는 문제다. 그리고 과학자들 사이의 협력을 촉진하기 위해 물리주의적 보편 언어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과학의 조율이란 특정한 사회 제도를 필요로 하는 사회적 성취다. 노이라트가 옹호하는 식의 과학 언어의 통일은 유효하지 않다. 그러나, 과학과 국제 과학 공동체 조직의 사회적 성취는 시장과 계획에 대한 논쟁의 맥락에서 의미심장하다…(과학 공동체는) 기존 시장 사회 내에서 지식과 활동을 비시장적으로 조정하는 여러 사례 중 하나를 제시해 준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