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이 숨는 곳

옛날에 의뢰받아 작성했지만 출간되지 않은 책의 검토서 하나 더 올립니다.

남자들이 숨는 곳 Where Men Hide

twitchell_where-men-hide지은이: 제임스 트위첼(James B. Twitchell), 켄 로스(Ken Ross, 사진 촬영)
하드커버, 264페이지
출판사: Columbia University Press
출간 연월일: 2006년 2월 24일

목차

1. 사슴 사냥 캠프
2. 권투 링의 치욕과 명예
3. 프리메이슨 지부: 형제단에 입회하다
4. 남자의 취미 공간: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모형 기차
5. 자기만의 방: 남자의 가장 좋은 친구 두 가지(개와 TV, 주로 개)
6. 차고: 자동차와 캘린더 걸
7. 미국의 이발소: “다음 신사분!”
8. 야구장 덕아웃: 씹고 뱉고 싸우자
9. 집 바깥으로: 나의 자동차, 나의 인생
10. 안락의자: 훤히 보이는 곳에 숨기
11. 스트립 클럽: 추파 뒤에 숨기
12. “나는 여기가 좋더라고”: 남자의 식사법
13. 작업장의 해머 타임
14. 일터에서: 사무실에서 숨기
15. 하나님을 위한 남자들의 연대: 초대형 교회와 ‘프라미스 키퍼(아버지 학교)’ 운동

내용 소개 및 의견

이 책은 20세기 미국 문화 속에서 남자들의 공간을 조명한 책이다. 남자 혼자서 틀어박히는 공간(작업장, 차고, 자동차, 취미 공간, 안락의자, 사무 공간)과, 남자 여럿이서 모이는 공간들(사슴 사냥 시즌에 열리는 사슴 캠프, 이발소, 프리메이슨 집회소, 스트립 클럽, 대형 교회)을 문학작품이나 역사적 일화 등 다양한 문화 코드와 이론을 동원하여, 그중에서도 특히 광고나 카탈로그 등 미국의 상업적 물질문화를 통해서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서문과 결론에서 이 책의 제목이 <남자가 숨는 곳(Where Men hide)>이지만 실은 <남자가 숨었던 곳(Where Men hid)>이라고 해야 정확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남자들의 공간’ 중 상당수─이발소, 프리메이슨 집회소, 사슴 사냥 캠프 등─는 미국에서 주로 20세기 초-중반까지 풍미했다가 현재는 거의 과거의 유물로 사라져 가고 있는 공간들이다. 저자는 결론에서 이렇게 ‘남자들만의 분리된 공간’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현상에 대해, 페미니즘의 시각을 채용하여 남녀 및 인종의 차별이 사라져 가는 변화의 부산물로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 책 전반에는 성 혁명이 일어난 1960년대 이전 미국의 ‘좋았던 황금기’─안정된 가정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남녀가 유별했으며 ‘우리 아버지 형님들이 핀업 걸을 가슴에 품고 전쟁터에 나갔던 시기’─에 대한 향수가 어쩔 수 없이 뚝뚝 묻어난다.

따라서 이 책의 제목을 다시 붙인다면, <남자가 숨는 곳>이 아니라 <미국 남자들이 숨었던 곳을 통해 엿보는 20세기─그중에서도 특히 20세기 초-중반의─미국의 물질문화>라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그만큼 이 책은 특정 시대 미국의 물질문화(광고 문구, 소비 상품, TV 프로그램, 대중 잡지 등)에 강하게 고착되어 있으며, 그 시대를 직접 살았던 사람이 아니고서는 공감하거나 이해하기 힘든 문화적 코드들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책 자체는 재미있다. 일단 저자가 글을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썼으며 흥미로운 일화들(예를 들어 디트로이트의 빅3 자동차 회사에서는 사업상 거래를 우리나라 사람이 룸살롱 가듯 주로 스트립 클럽에서 하며, 세 회사에서 각각 잘 가는 단골 스트립 클럽이 따로 정해져 있다는 등의)도 심심치 않게 소개한다. 또 군데군데 남성들의 문화와 심리에 대한 보편적인 통찰도 엿보인다.

저자인 제임스 트위첼은 플로리다 대학 영문학 및 광고학 교수이다. 낭만주의 문학을 가르쳐 오다 10여 년 전부터 상업문화, 특히 마케팅과 광고에 관심을 갖고 연구해 오고 있다. 지은 책으로 <욕망, 광고, 소비의 문화사>, <럭셔리 신드롬> 등이 있다.

발췌 번역

서론

만약 남자들에게 어디에 숨어서 지내느냐고 묻는다면, 십중팔구는 미친 사람 아니냐는 표정을 지으면서 “뭐, 내가 숨는다고요?” 하고 되물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질문을 여자들에게 던진다면 그들은 바로 그 질문의 의미를 이해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의 주제이다.

내가 애초부터 남자들이 숨는 동굴을 연구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 원래 내 주된 본업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낭만주의 시를 가르치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상업 문화, 그중에서도 광고를 연구하는 것이 내 부업이 되었다. 이렇게 된 것이 역설적으로 보일지는 몰라도 나한테는 충분히 말이 된다. 나는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들을 가르치지만, 내가 진짜로 흥미를 느끼는 것들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다. 앞으로 보겠지만, 광고는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마샬 맥루한이 정신 나간 소리도 많이 했지만, “언젠가 역사학자와 고고학자들은 광고야말로 우리 시대 모든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활동을 가장 풍부하고도 가장 믿음직하게 반영한 사료임을 발견할 것이다.”라는 그의 유명한 말은 정곡을 찔렀다고 나는 믿는다. 이러한 믿음은 내가 이 주제로 흘러오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1990년대가 끝날 무렵, 광고계에는 작은 공황이 일었다. 젊은 남성들이 별안간 광고를 보지 않게 된 것이다. 적어도 겉보기에는 그랬다. 그들은 갑자기 닐슨 리서치[마케팅 조사기관]의 레이더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들은 텔레비전도 보지 않고, 하워드 스턴[저질스러운 입담으로 유명한 미국의 DJ] 같은 것 말고는 라디오도 듣지 않았으며 <맥심>이나 <디테일스> 같은 남성 잡지를 빼고는 아무 것도 읽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애드버타이징 에이지> 같은 업계 매체만이 아니라 전국 신문과 공중파 TV에서도 머릿기사로 다루어졌다.

남성들은 언제나 광고업자들이 찾아내기가 힘든 소구 대상이었다. 바로 그 때문에 수퍼볼에 붙는 광고 단가가 30초당 2백만 달러를 훌쩍 뛰어 넘고, 텔레비전에는 프로레슬링과 배스 낚시 프로그램이 그렇게 넘쳐 나는 것이다. 익스트림 스포츠가 옛날의 게임들을 시야 저편으로 밀어내고, 스노우보드 같은 운동이 올림픽 이벤트가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아마 그 다음 주자는 페인트볼[서바이벌 게임]이 될 것이다. 그것은 헤비메탈과 랩이 MTV의 주류가 된 이유이기도 하다. 만약 면도 크림, 맥주, SUV 따위를 팔아야 하는 입장이라면, 팔기 전에 우선 그들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남자들, 그중에서도 특히 젊은 남자들은 찾아내기가 힘들고, 광고를 전하는 동안 한 곳에 붙들어 두기란 더더욱 힘들다. 아들 가진 부모들에게 가서 물어보라.

젊은 남자들이 광고업자의 시야에서는 숨어 버리더라도, 나는 그들을 수업 시간에─적어도 잠시 동안은─확실히 붙잡아 놓을 수 있다. 나는 남학생들에게 수업 시간이 아닐 때는 주로 무엇을 하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리고 그중 많은 이들이 고속 인터넷이 설치된 기숙사 방이나 동아리방이나 게임방으로 돌아가서 복잡한 비디오게임을 한다는 것을 알고 흥미가 돋았다. 물론 이 세대는 오락실용 아케이드 게임을 하면서 컸지만, 오늘날의 게임도 어렵지 않게 익힐 수 있으며 또한 전 세계에 게이머들이 있다. 온라인 포커 게임이 젊은 아이들 사이에서 큰 유행이어서 그들은 나보다도 도박 하는 것을 더 잘 안다. 그들은 또 인터넷 속으로도 숨는다. 음악을 다운로드하거나 눈요기꺼리 포르노를 보기도 하고 인터넷 메신저 같은 새로운 방식으로 친구들과 의사소통하기도 한다. 많은 아이들은 휴대 전화를 가지고 다니면서 한쪽은 귀에 꽂고 손가락으로는 항상 문자를 보낸다. 결국 그들은 그곳에 잘 있었다. 다만 1980년대처럼 타임워너와 비아컴과 뉴스 코퍼레이션[셋 다 거대 미디어 그룹임]의 교차 지점에 있지 않을 뿐이다. ESPN, <필드 앤 스트림[Field and Stream, 사냥 및 낚시 잡지]>, ‘아웃도어 라이프 네트워크[Outdoor Life Network, 역시 사냥과 낚시를 주로 다루는 케이블 채널]’는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으며 다시 데리고 올 수 있다고 자신 있게 주장했다.

사라지는 남자들의 역사(상업 문화를 이끌어 온 프로그래머들은 남자들이 사라지기 시작한 때가 1960년대부터라고 보고 있다)에 대해서 한창 생각하고 있던 어느 날, 머리를 자를 일이 생겼다. 내가 간 곳은 집 근처의 작은 대학촌에 자리한 ‘콜린스’라는 유니섹스 미용실이었다. 그 창문에는 ‘남녀 모두를 위한 헤어스타일링’이라는 문구를 써 붙여 놓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 앉아 너덜너덜해진 <에스콰이어> 1999년 3월호를 집어 들었다. 잡지를 뒤적이는데, 뉴저지의 한 사진작가가 ‘남자들의 방[Men’s Room─남자화장실이라는 뜻도 있음]’이라는 제목으로 찍어 게재한 화보가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는 “우리는 어디에 머무는가: 남자들이 여자 없이 서식하는 곳들의 초상”이라는 헤드라인이 붙어 있었다(Montali, 52p.). 나는 그 이미지들과 거기에 붙은 복잡한 설명에 이끌렸다.

나는 그 사진들이 사람을 끌어당긴다는 것을 곧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머리를 자를 때는 안경을 벗기 때문에, 글씨가 잘 안 보여서 잡지를 코앞에까지 끌어당겨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내가 그러고 있자니, 항상 내 머리를 잘라 주는 데이빗도 자르던 것을 멈추고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그도 흥미가 동하는 것이 분명했지만, 우리는 서로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우리 바로 옆 자리에서 한 여자가 머리를 염색하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우리가 본 것은 아쉽게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의 수영복 화보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차고에서 모형 자동차들이 경주하는 모습, 텅 빈 권투 링, 모형 기차 세트 따위에 불과했지만, 우리 둘은 그러한 이미지가 너무나 익숙했고 기묘하게도 공범자가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발소 문화는 나의 세대를 거치면서 완전히 변화를 겼었다. 내가 아직 꼬마였을 때, 버몬트 주 벌링턴 읍내의 뱅크 스트리트 이발소는 항상 잡담 소리로 시끄러웠다. 이발사들은 자기들끼리나 손님들하고나 편안하고도 친숙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이발소에서 대기하다가 내 차례가 와도 건너뛰고 제리 머롤라 씨가 일을 다 끝마칠 때까지 기다릴라 치면, 다른 이발사들의 악의 없는 놀림을 감수해야만 한다. 다른 이발사들은 “아 그래, 네 머리는 제리만 잘라 줄 수 있지.” 하고 나를 놀려 먹으면서 모두가 나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예약 따위는 있지도 않았다. 이발소에는 집에서는 구경도 못할 잡지들이 쌓여 있었다. 그러다 1960년대부터 여자들이 이발소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사방이 조용해졌다. <어고시[Argosy, 대중소설 잡지, SF작가들의 등단 무대이기도 했음.]>와 <폴리스 가제트[The Police Gazette, 싸구려 소설 잡지로, 속옷 차림을 한 여성들의 그림을 실었는데 이것이 핀업 걸의 원조가 되었다.]>는 자취를 감추었다. 머리를 자르는 것은 사적인 일이 되었다. 가위 대신에 플라스틱 날이 달린 전동 클리퍼가 등장했다. 그들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사실 여자가 머리를 잘라 줄 확률이 높아졌으니 잘 된 거 아냐.

그래서, 현대적인 방식에 따라 데이빗과 나는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나는 이 사진에서 본 것이 남자들이 가는 곳에 대한, 그리고 그들이 가진 물건들에 대한 일종의 로드맵임을 깨달았다. 이 사진들을 보면서 나는 평화로움을 느꼈다. 나는 이 공간들을 이해할 수 있었고, 나 자신이 그 일부라고 느꼈다. 나는 궁금했다. 이 이미지들을 면밀히 읽어 냄으로써 남자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다시 말해 이 이미지들 속에서 남성성의 내러티브를 형성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텍스트(윽, 이건 영문학 선생 말투인 걸)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또는 요즘 학계의 유행어를 써서, 남성성이 구성되는 것이라면, 그것을 형성하는 것 중 일부를 이 사진들 속에서 포착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사진작가인 켄 로스에게 전화를 걸어, 그가 ‘남자들의 방’이라고 이름 붙인 남자들의 공간을 찍은 사진들을 좀 더 볼 수 있겠느냐고 부탁하였다. 그는 내게 그중 몇 장을 보내 주고 나중에 다시 몇 장을 더 보내 주었는데, 그것을 보고 나는 그가 많은 물건들을 한데 아우르는 공간의 위상학을 창조해 내었음을 깨달았다. 한 공간에서 보이는 모티프와 상징들이 다른 이미지에서도 그 모습을 드러냈고, 특정한 종류의 시각적 이미지들이 다양한 내러티브를 관통하며, 말하자면 화성[<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의 그 화성]을 관통하면서 자리를 바꿔가며 등장했다.

그러나 그의 이미지를 다 보고 나자, 나는 일종의 황량함을, 어두컴컴하고 심지어는 불길한 기분을 느끼게 되었다. 헤밍웨이와 맥주 광고가 뭐라고 뇌까리건 간에, 남자의 공간은 확실히 해피밀은 아니다. 화성은 정말로 외롭고 기묘하게 삭막한 곳이다. 그러나 그 이미지를 휴식의 순간으로, 남자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기 위해 찾아들어가는 구석으로, 죽치고 앉아 뭘 만지작거리거나 빈둥거리는 장소로, (여자들을 공공연히 적대해서가 아니라 남자들에게는 그저 아무 것도 안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여자들에게 불친절한 휴게실로 본다면, 그곳은 충분히 즐거운 공간이 된다.

7. 미국의 이발소: “다음 신사분!”

우리 부모님 대에서부터 내려온 이발소 농담이 있는데 이런 것이다. 한 농부가 머리를 자르러 읍내에 나갔다. 그는 참을성 있게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 이발사가 “다음 신사분!” 하자, 농부는 펄쩍 뛰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니 그렇게 빨리? 내가 다음인 줄 알았는데?”

이 농담을 음미하려면 이발소의 평등주의적 성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발소는 모든 남자들이─거의 모든 남자라고 하자─동등하게 대우받는 곳이다. 물론 어느 특정한 이발사를 원한다면 차례를 건너뛰고 더 기다릴 수도 있겠지만, 이발소에서 취하는 표준적인 행동은 이렇다(아니 이러했다). 이발소에 간다. 차례를 기다린다. 기다리면서 잡담도 좀 한다. 머리를 자른다. 돈을 내고 나온다. 불평할 일이 없다. 남자들이 숨는 다른 많은 공간들과 마찬가지로, 이발소에도 이 과정을 확립하는 입문 의례가 있다. 소년이 처음으로 머리를 자르는 것은 엄마에게서 분리되는 중요한 순간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이는 다른 문화권에서도 중요한 행사이다. 스페인어 문화권에서는 이 행사를 가리키는 숙어─“이발소에서는 울면 안 된다(En la barberia no se llora)”─까지 있다.

요즘에는 이발소에서 보내는 시간이 기다리는 데 15분, 머리 자르는 데 15분 정도면 되지만, 두 세대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이곳에서 족히 한 시간은 넘게 보냈다. 이발과 면도라는 두 가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면도는 이발소에 가는 중요한 이유였다. 지금은 에이즈라는 유령 때문에 면도가 이발소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보다 중요하게는, 이발소라는 공간 전체가 빠르게 사라져 갔다. 그것은 (시가 바처럼) 남자들이 방치해서도 아니고 (프리메이슨처럼) 여자들이 개입해서도 아니다. 이발소가 사라진 것은 주로 일회용 면도기 때문이다. 1880년대의 남성 인구가 5천만 명에 이발사의 수는 약 4만 5천 명이었는데, 오늘날에 소비자의 수는 그 6배가 증가한 반면 이발사의 수는 제자리걸음이다. 이러한 쇠퇴는 특히 2차 대전 이후로 더더욱 급격해 졌다. 1950년대에는 총 28만 천 개의 이발소가 있었던 반면, 현재 그 수는 5만 5천 개로 줄었다(Steten, p.42).

옆 페이지의 이미지는 이발소가 역사적으로 쇠락의 일로를 걷고 있는 와중에 찍은 것이다. 이 속에서 우리는 과거의 흔적과 그것이 현재 쇠퇴하게 된 이유를 둘 다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남자들이 머리를 자르는 장소라는 의미로서 ‘이발소’라고 부르는 것은, 한때는 시가, 위스키, 도색 잡지,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술이 소비되는 시끌벅적한 소굴이었다. 사진 속 정면에 걸린 거울 옆에 이발사가 써 붙여 놓은 메모를 읽을 수 있다면, 여러분은 현대성으로의 변화를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업자와 고객 양자는 서비스가 수행되는 동안 흡연이 금지되어 있음.”이라고 쓰여 있다. 간단한 메모에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공식적인 단어를 사용하였지만, 이는 이발소들의 과거 모습을 희화화한 것이기도 하다. 남자들은 집에서 시가를 피울 수 없으면(혹은 술을 마실 수 없으면) 그것을 이발소로 들고 왔다.

이발소와 선술집(saloon)의 공통점은 바로 ‘병’이었다. 금주법 시대에 이발소는 가끔씩 무허가 술집 역할도 했다. 그때에는 알코올을 주 원료로 한 모발용 약품을 (이발사 자리 앞쪽 찬장에 쌓아 놓고) 색깔 있는 병에 담아 팔았는데, 규제 대상이었던 에틸알코올을 뒷방에 통으로 쌓아 두고 거기서 병에 덜어다 몰래 팔기도 했다. 실제로 요즘에 애프터 셰이브로 쓰이는 ‘베이 럼’에는 그 시대의 밀주 진과 비슷한 마개가 달려 있는데, 이는 머리에 바르는 토닉과 몸속에 부어 넣는 토닉과의 연관성을 상기시킨다. 금주법 시대는 처방전 없이 매매하는 특허 의약품, 이른바 만병통치약의 시대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는 진통제라는 명목으로 알코올과 아편제를 운반하는 주된 수단이었다. ‘시폼(Sea Foam)’, ‘브릴리언타인(Brilliantine)’, ‘타이거 럽(Tiger Rub)’ 같이 이발사가 조제한 약품들 덕분에 남자들은 알콜 음료의 유통과 판매를 금지한 수정헌법 18조를 교묘히 피해 갈 수 있었다. 실제로 이발소 모발용 토닉의 알코올 도수는 특허 의약품보다 훨씬 높았다. 그래서 여자들이 ‘부인병에 효험이 있는’ 리디아 E. 핑크햄의 ‘식물 복합제’를 사는 동안에, 남편들은 이발소에서 ‘플로리다 워터’를 보충하고 있었다. 우리는 왜 그토록 많은 갱단 조직원들이 면도를 하던 도중에 살해당했는지 의문을 품어 보아야 한다. 그건 그곳이 그들의 비즈니스 장소였기 때문이다. 뒷방은 술병 공장이고 앞방은 남자들이 득시글한 이발소라니 이 얼마나 찰떡궁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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