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호프스태터–미국의 반지성주의

이 책이 아직까지 번역되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오래 전에 제안했다가 빠꾸 먹은 검토서 올립니다. 2009년에 쓴 것입니다.

untitled미국의 반지성주의 Anti-intellectualism in American Life

지은이: 리처드 호프스태터(Richard Hofstadter)
출간연도: 1962년
분량: 434쪽
출판사: Vintage Books

목차

1부 서론
    1장 우리 시대의 반지성주의
    2장 지식인을 백안시하는 경향에 대해
2부 가슴의 종교
    3장 복음주의의 기풍
    4장 복음주의와 신앙 부흥 운동
    5장 모더니티에 대한 반감
3부 민주주의의 정치
    6장 젠틀맨 계층의 쇠퇴
    7장 개혁 세력의 운명
    8장 전문가 집단의 부상
4부 실용 중심의 문화
    9장 기업가와 지식인
    10장 자기 계발 및 영성 개발 서적
    11장 반지성주의 테마의 변종들
5부 민주주의 사회의 교육
    12장 학교와 교사
    13장 ‘생활 적응(Life Adjustment)’ 운동
    14장 어린이와 세계
6부 결론
    15장 소외와 순응의 지식인
감사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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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이 책에서 말하는 ‘반지성주의’란 지식인과 지적 활동을 백안시·적대시하는 사회적 경향을 말한다. 저자는 먼저 이 주제를 다루게 된 계기인 1950년대의 정치적 상황을 설명하고, 여러 가지 맥락에서 반지성주의적 태도가 드러난 연설문, 의사록, 인터뷰, 기사 등 1차 자료들을 차례로 소개한다.(1장) 이들 사례를 종합하며 저자는, 미국에는 지식인이 허세에 차 있고 대중을 기만하며 남성적이지 못한데다 속물적이고, 나아가 비도덕적이고 위험하다는 고정관념이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 고정관념에 따르면 평범한 사람이 살면서 몸으로 체득한 상식과 윤리야말로 전문가나 식자들이 학교에서 배운 지식보다 훨씬 더 우월하다. 즉 분석적이고 보편적인 ‘지성(intellect)’을 배격하고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슬기(intelligence)’를 중시하는 것이 미국의 풍토이다. (이를 가장 잘 구현한 인물이 바로 미국의 영웅으로 받들어진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이다.)

미국 건국 초기만 해도 청교도 성직자와 헌법 제정자(Founding Fathers)라는 두 지식인 집단의 연합이 사회적 권력을 행사하며 지적·정치적 전통의 기초를 세웠다. 그러나 1820년대 이후부터 서부 개척, 산업 발전, 평등주의 부상 등의 사회 경제적 변화로 인해 건국 초기의 공화 질서가 해체되었다. 전통적 명문 계층은 세련된 문화를 영위하며 명맥을 유지했지만 그 사회적 영향력은 대폭 축소되었고, 그와 더불어 비판적이거나 창조적인 정신도 잃었다.(15장) 맨손으로 자수성가한 기업가들이 시대를 호령하고 비즈니스 논리가 거침없이 통용된 19세기의 도금 시대(Gilded Age)는 ‘나약한’ 지식인과 ‘쓰잘데기 없는’ 학교 교육에 대한 경멸이 최고조에 달한 때였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사회가 복잡해지고 과학이 발전하면서 공식 교육을 받은 전문가의 지식을 여러 분야에서 필요로 하게 되자(특히 뉴딜 정책이 시행되면서, 지식인들은 전문가 집단으로서 정부 정책에 참여하여 중요한 위치에 서게 되었다), 지식인에 대한 비웃음은 두려움과 분노로 바뀌게 된다. 또 이데올로그로서 지식인의 비판적, 진보적 특성 때문에 우익들은 전통적으로 지식인을 적대시했다. 하지만 20세기 이후 미국 반지성주의의 깊숙한 곳에는 모더니티 자체에 대한 반동이 숨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5장) 즉 1차대전 이후 미국에 몰아닥친 변화–세계시민주의와 다윈 진화론의 유입, 미국 고립주의의 종말, 전통적 자본주의의 (대공황으로) 붕괴와 중앙 집중화된 복지 국가로의 전환, 막대한 전쟁 부담 등–를 거부하고, 대륙으로 떨어져 고립된 채 촌락 사회가 온존하고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뒷받침하며 산업 자본주의가 제재 없이 활개 쳤던 19세기의 미국으로 회귀하려는 운동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미국 사회에서 반지성주의의 모태가 되거나 희생양이 된 분야를 하나씩 역사적으로 검토한다. 우선 18세기 중후반~19세기에 미국을 휩쓸었고 아직까지도 영향력을 떨치고 있는 기독교 복음주의 운동은 반지성주의의 가장 강력한 동력이 되었다.(3-4장) 초창기의 청교도 성직자들은 지식인 계층이었지만, 18세기 중반 ‘대각성 운동’이 일어나면서 청교도 시대가 끝나고 복음주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이 운동을 주도한 전도사들은 교육 수준이 높지 않았었으며, 기존 성직자들을 ‘교활하고 냉혈한 위선자 집단’으로 매도하고 “성경 외에는 책이 필요 없다”고 주장하며 호전적인 반지성주의 운동을 벌였다. 문명과 교육에서 소외된 남서부 벽촌의 주민들을 최대한 많이, 빨리 전도하려면 이성보다 감성에 호소하고 요란한 통성기도에 의존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던 것도 있다. 남북전쟁 이후에는 도시 인구가 폭발하면서 드와이트 무디, 빌리 선데이, 빌리 그레이엄 등 대도시를 무대로 전국적 성공을 거둔 스타 전도사들이 출현하는데, 이들은 신문에 광고를 내고 교회가 아닌 대형 강당에서 집회를 여는 식으로 복음주의에 비즈니스 마인드를 결합했고, 서커스에 나오는 거인을 도어맨으로 고용하고 설교 중에 옷을 벗어젖히거나 비속어를 내뱉는 등 쇼와 비슷한 요소를 가미했다. 그리고 20세기 이후에는 앞서 말한 모더니즘 유입의 반작용으로 종교적 근본주의가 오히려 더더욱 전투적이고 완고해지며(1920년대에는 학교에서의 진화론 교육을 반대하는 운동이 대대적으로 펼쳐진다.), 다양성을 용납지 않고 모든 것을 선과 악으로 파악하는 미국 우익 세계관의 기저를 이루게 된다. 개신교 근본주의와 연합하여 모더니티에 반기를 들었다는 면에서 가톨릭도 예외는 아니었다. 복음주의와 쌍벽을 이루는 또 하나의 정신적 전통은, 학습된 인공적 이성보다도 신이 주신 직관적 “지혜”를 선호하는 원시주의(primitivism)다. 이는 애초에 미국이라는 나라가, ‘세련되었지만 타락한’ 유럽 문명과 스스로를 구분하면서 세워졌다는 데서도 기인한다.

복음주의와 원시주의가 미국인의 의식에서 반지성주의의 뿌리를 이룬다면, 반지성주의가 미국인 의식의 전면으로 떠오른 것은 미국이 비즈니스 패권이 지배하는 사회였기 때문이다.(9장) 비즈니스와 지식인은 근본적으로 서로 불화할 수밖에 없는 관계에 있을 뿐더러, 개척지에서 맨손으로 사업을 일구는 과정에서 거칠고 공격적인 남성적 마인드와 과감한 의사결정, 기회를 놓치지 않는 순발력이 미덕이 되고, 지적이고 문화적인 것은 ‘유약하고 여성적’이라고 배척하는 풍토가 심화된 것이다. 19세기 전반까지만 해도 문화를 애호하는 부유한 (특히 동부 해안 지역) 상인 계층이 지식인을 후원하는 전통이 이어졌지만, 비즈니스가 서부로 빠르게 확산되면서 새로 유입된 신흥 자본가들은 반지성, 반문화 운동에 가장 큰 동력을 제공한 세력이 되었다. 이들 중 다수는 공식 교육 없이 맨손으로 자수성가하여 성공 신화를 양산한 장본인들이었는데, 이들의 이상을 잘 반영한 문헌이 19세기부터 출현한, 강한 종교색을 띤 자기계발(self-help) 서적들이다.(10장) 원래 비즈니스에 열심히 임하는 것이야말로 신을 섬기는 방법이라는 것이 전통적인 청교도 논리인데, 19세기 말부터는 미국 중산층 기질의 세속화와 더불어 이 관계가 역전되어 신앙이 세속적 성공의 도구가 된다. 이런 부류의 ‘종교 실용서’에는, 타고난 재능보다 인성을 강조하고, 사업 경영에 쓸모없는 고등 교육보다 현장에서 부딪치며 배우는 경험을 중시하며, “내향적 기질보다는 외향적 기질이, 비판적 지성보다는 맹목적인 믿음이” 성공과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기업가들의 마인드가 담겨 있다. 20세기에 들어 비즈니스 규모가 커지면서 기업도 전문적인 관리·기술 지식을 필요로 하게 되고, 대학도 이에 부응하여 경영대학원(business school)을 설립하는 등 좀 더 실용적인 직업 교육을 도입하게 된다. 하지만 기업 경영 현장의 변화와는 별도로 지성과 재능보다 인성과 순응을 선호하는 기업가들의 마인드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지식인과 그들의 전문 지식을 적대시하는 경향은 비단 기업가들뿐만이 아니라, 농민과 노동자(심지어 노동 운동) 사이에서도 보편적이었다.(11장) 미국 농민들은 계급감정과 실용주의의 영향으로 젠틀맨 계층의 부농과 전문가들이 개발한 새로운 농법을 불신하고 이를 받아들이기를 오랫동안 꺼렸다. 또 지식인들은 초창기 노동 운동의 태동과 노동자들의 의식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면서도 이후 노조와 사회주의 정당 내에서 소외되었다. 이는 지식인들이 노동 운동을 통해 사회주의나 개혁 등 더 큰 목표를 추구했던 반면 노동자들은 기본적으로 기업가와 유사한 자수성가형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 서로 지향점이 달랐기 때문이기도 하고, ‘먹물에 찌들지 않은 순수하고 강인한 노동자’의 이상이나 조직 내의 잭슨식 평등주의 이상과 충돌을 빚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잭슨식 민주주의(Jacksonian Democracy)’로 대표되는, 미국 사회 특유의 평등주의적 풍토는 미국 정치에서 반지성주의를 규정한 주된 힘이었다.(6장) 처음 미국을 건국한 지도자들은 부유한 지식인(젠틀맨) 계층이었지만, 평등주의적 욕구는 아주 초창기부터 지식인 내지 전문 정치인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잭슨식 민주주의’란 1824년 대통령으로 당선된 앤드류 잭슨(지지자들은 그를 책이 아니라 숲과 들판에서 배운 지혜를 지닌 농부의 아들, 보통 사람들의 영웅으로 찬양했다)으로부터 유래한 정치 이념으로, 중앙 집권과 상류층을 배격하며, 정부 활동은 기본적으로 특별히 교육받은 전문가가 아니라 상식을 지닌 보통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이다. 이후로 전통적 젠틀맨 계층은 정치 무대에서 소외되었고, 공직은 순번제로 돌아가면서 하게 되었으며, 의회에서는 위스키와 단검이 난무하게 되었다. 남북전쟁 이후 젠틀맨 가문의 지식인 개혁가들이 공무원을 시험을 통해 뽑으려는 공직 개혁을 시도함으로써 정치 기득권과 충돌을 빚게 된다(7장). 개혁가들은 기존 정치인들이 무식하고 천박하며 부패했다고 비난한 데 비해, 정치는 남성의 전유물이므로 유약하고 여성적인 지식인들은 거칠고 힘든 정치판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것이 기존 정치인들의 주장이었다. 이런 고정관념을 쇄신한 사람이 바로 시어도어 루스벨트였다. 그는 부유한 집안 태생에 하버드 출신이었지만 개인적인 남성적 매력과 서부에서의 경험을 내세워 강하고 결단력 있는 인상을 줌으로써 1890년대에 대통령으로 선출될 수 있었다. 그와 더불어 미국은 혁신주의(progressivism) 시대로 들어섰고, 급속한 경제 사회 발전에 부응하여 정부 기능도 복잡해지면서 지식인 전문가를 필요로 하게 된다.(8장) 그 최초의 사례가 1892년 위스콘신 대학과 주 정부가 서로 긴밀한 정책 협력 관계를 맺은 ‘위스콘신 모델’이었고, 이 모델은 기득권의 거센 저항을 받았지만 이후 뉴딜 정책을 추진한 두뇌 집단(brain trust)의 원형이 되었다. 지식인이 드디어 권력의 중심부로 들어서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과거와는 다른 종류의 ‘실용적’ 전문 지식으로 무장한 지식인이 출현하게 된 것이다. 이들은 대중의 선망과 동시에 경원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 추세는 전쟁 수행을 위해 고급 두뇌 수요가 더더욱 높아진 2차대전기에 절정에 이르렀다가, 전쟁 이후 대대적인 역풍을 맞게 된다. 지식인들의 유례없는 지지를 한 몸에 받았던 대통령 후보 애들레이 스티븐슨을 대상으로 지식인을 급진주의, 국가 반역, 여성적 유약함 등과 연관시키는 반지성주의적 공격이 행해졌고, 그가 결국 참패한 것이다. 반면 존 F. 케네디는 시어도어 루스벨트 이후 최초로, 지성과 문화에 대한 존중을 진취적이고 실용적인 미덕과 결합시키는 데 성공한 대통령이었다.

반지성주의적 신념이 가장 적극적으로 실천에 옮겨진 분야가 바로 미국의 교육이다. 미국 학교 교육의 실패–교사의 저임금과 낮은 사회적 지위, 노후하고 게토화된 학교, 운동선수에 대한 과도한 숭배, 학업 성취도의 전반적 저하, 성적이 뛰어난 학생의 방치–가 대부분 여기에 기인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다른 나라와는 달리 미국에서 교사는 애초부터 존경받는 직업이 못 되었다.(12장) 마을에서는 교사 월급을 충분히 줄 여력이 없었고, 공직자의 봉급이 너무 높으면 안 된다는 평등주의적 의식이 작용해서 대우도 변변치 않았다. 그래서 교사는 다른 (남자다운) 직업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잠시 거쳐 가거나 어쩔 수 없이 눌러앉는 자리로 여겨졌고, 자격 미달인 자들이 교사가 되어 학교에 대한 인식을 더욱 악화시키는 악순환이 벌어졌다. 여성 교사가 대규모로 충원되면서 이런 악순환은 해결되는 듯했지만, 교직의 여초 현상 때문에 교사의 지위가 더욱 하락하는 부작용이 생겼고 20세기 들어 학교와 학생 수가 크게 증가하면서 인력이 부족해지자 교사의 질을 담보하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예로부터도 지식 그 자체의 추구나 지적 능력의 개발은 미국 교육의 목표가 아니었지만, 특히 1870년대 이후 중등 의무 교육이 시행되고 쏟아져 들어오는 이민자의 자녀들까지 가세해 학생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공부에 관심 없는 대다수 평균 이하의 학생들에게 고교 교육의 포커스를 맞추어 대학 진학보다는 시민 의식 함양과 실용적 직업 교육에 집중해야 한다는 민주주의적 신념이 헤게모니를 쥐게 된다. 이 신념이 가장 극적으로 표현된 예가 1940-1950년대에 시행된 ‘Life Adjustment’ 운동으로, 이를테면 외국어나 수학, 고전 같은 학구적 과목이 대거 폐지되고 운전이나 가사처럼 학생들의 흥미와 필요에 부응하는 실용적인 과목이 개설되었다.(13장) 이 운동은 너그럽고 민주적이며 진보적인 이상을 추구했지만, 매스미디어가 부추기는 소비문화에 순응하는 수동적 인간을 길러냈다는 점에서 보수적이기도 했다. 존 듀이의 교육 철학은 이런 새로운 교육 운동을 떠받친 지적 기둥 중 하나였으나, 현장에 적용되는 과정에서 많은 부분이 듀이의 의도와 달리 단순화되고 왜곡되었다.(14장)

 

발췌 번역

1. 우리 시대의 반지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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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미국 역사에서 좀 더 오래된 과거의 특정 측면을 다루고 있긴 하지만, 실은 1950년대의 정치적·지적 상황에 대응하여 착상하게 된 것이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웬만해서 듣기 힘들었던 ‘반지성주의’라는 말이, 이 시기를 거치면서 비방을 되받아치고 서로를 매도하는 익숙한 단어로서 전국에 알려지게 되었다. 과거에도 미국의 지식인들은 지성을 경시하는 국가적 경향 때문에 좌절과 쓰라림을 감내해야 했지만, 지식인 공동체 외부에서 이런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이 이토록 많았거나, 이런 식의 자기비판이 전국 규모의 운동이라는 형태로 나타난 시기를 상기하기란 힘들다.

이 나라에서 비판적 지성의 가치가 폭락했다는 우려를 불러일으킨 주범은 대체로 매카시즘이었다. 물론 매카시의 부단한 공격은 지식인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었지만–그는 더 큰 사냥감을 쫓고 있었다–지식인들은 그의 총구가 향하는 방향에 서 있었고, 그의 추종자들은 지식인이 쓰러질 때에 더더욱 환호하는 듯했다. 지식인과 대학을 향한 그의 돌격을 본받아, 하급 종교재판관들이 전국에서 비슷한 행태를 벌였다. 이윽고 매카시의 비난 공세로 인해 극심한 악의와 재미없는 머저리짓이 횡행하는 분위기에서 1952년 치러진 대통령 선거는, 각각 지성과 무지를 대표하는 후보가 서로 극명한 대조를 이룬 한 편의 드라마였다. 한 쪽은 비범한 지성과 스타일을 갖춘 정치인 애들레이 스티븐슨으로, 역사상 지식인에게 그만큼 어필한 사람이 드물었다. 한편 그 반대쪽은 진부한 수준의 지성에 자기 의견이 그다지 분명치 않으며 닉슨이라는 입맛 안 맞는 러닝메이트에게 끌려 다닌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장군이었다. 그의 선거 운동 분위기는 아이젠하워 자신보다는 그의 러닝메이트와 당 내 매카시 파벌의 손에 좌지우지되었다.

지식인들 자신과 그 비판 세력 모두는, 아이젠하워의 압도적 승리를 미국이 지식인을 거부했다는 지표로서 받아들였다. 시사 주간지 <타임>은, 아이젠하워의 승리로 “오랫동안 의심해 왔던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미국의 지식인과 대중 사이에 넓고도 불건전한 격차가 존재한다는 것이다.”면서 짐짓 우려하는 척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서 슐레진저 주니어는 선거 직후 발표한 신랄한 글에서, 지식인이 “지난 한 세대 동안 몰랐던 생소한 상황”에 놓였다고 말했다. 지식인이 대체로 이해와 존경을 누렸던 20년간의 민주당 집권기가 끝나고, 친기업 세력이 권좌로 복귀하면서 “기업 패권의 거의 정해진 수순”으로 “천박화”를 끌고 들어왔다는 것이다. 이제 ‘달걀머리(egghead)’, 별종으로 취급되어 쫓겨난 지식인들은 자신들을 거의 필요로 하지도 않고 이해하지도 못하는 당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이고, 소득세부터 진주만 공격에 이르는 모든 문제의 희생양이 될 것이다. “기업가들 사이에서 반지성주의는 오래 전부터 반유대주의와 같은 것이었다…오늘날 미국 사회에서….지식인은 쫓겨나고 있다.”고 슐레진저는 말했다.

새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이 모든 우려는 충분히 이유 있는 것이 되었다. 이미 트루먼 재임기에도 지식인들은 지방 정치인들의 그늘에 가려졌지만, 스티븐슨의 말마따나 카 딜러(Car Dealer)가 뉴딜러(New Dealer)를 몰아냄으로써 지식인과 그들의 가치에 대한 거부에 결정타를 먹인 듯했다. 이제는 순수 학문에 대한 찰스 E. 윌슨의 공격, 아이젠하워의 서부 소설 취향, 지식인은 말 많고 허세 부리는 사람이라는 아이젠하워의 관념 등이 나라를 논하는 소재가 되었다. 하지만 아이젠하워 행정부 시기에 이런 사회 분위기는 전환점에 이르렀다. 매카시 광풍이 공화당 대통령과 마찰을 빚다가 드디어 수명을 다해 사그라진 것이다. 위스콘신 주 상원의원 매카시는 고립되고 비난받고 결국 쪼그라들었다. 마침내 1957년 소련이 스푸트니크호를 발사하면서, 국가 위신을 의식적으로 재검토하는 물결에 주기적으로 휩쓸리는 미국 대중의 경향이 다시금 꿈틀거리기에 이르렀다. 스푸트니크는 미국의 국가적 자부심에 충격 그 이상이었다. 이로써 학교 시스템과 미국 사회 전체에 퍼진 반지성주의의 결과에 엄청난 이목이 쏠리게 되었다. 지식인에 대한 국가적 혐오는 단순한 망신거리가 아니라 졸지에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가 되었다. 지난 몇 년 동안 국가에 불충하는 교사들을 염려했던 사람들은 이제 그들의 낮은 월급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날로 심해지는 안보 강박관념 때문에 연구 사기가 저하된다고 우려해 온 과학자들의 말에 갑자기 귀를 기울이는 이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미국 교육의 느슨함을 질타하는 목소리는 그전까지 소수 교육 비평가들의 전유물이었지만, 이제는 텔레비전 대중 잡지, 기업가, 과학자, 정치가, 장성, 대학 총장들까지 나서서 목청을 높이기 시작했고, 이는 곧 국가적 자성의 합창으로 울려 퍼졌다. 물론 이런 소동으로 곧바로 자경단 기질이 사라진 것도 아니고, 미국 사회의 한 흐름으로 존재해 온 반지성주의가 말끔히 걷힌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가장 직접적인 영향권인 교육 분야에서도, 사람들의 열정은 좀 더 많은 지식인이 아니라 좀 더 많은 스푸트니크를 생산해 내는 쪽으로 주로 쏠리는 듯했고, 우수한 아이들을 냉전의 자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식의 수사가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분위기는 확연히 변했다. 1952년만 해도 반지성주의라는 유령에게 괴롭힘 당하는 사람은 지식인들뿐이었지만, 1958년에는 이것이 중요하고 심지어 위험한 국가적 약점이라는 인식이 대다수의 생각 있는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지니게 되었다.

오늘날[케네디 대통령이 재임 중이던 1962년–옮긴이]에는 1950년대의 정치 문화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당시 매카시즘과 아이젠하워 행정부에 지식인이 공적 영역에서 몰락했다고 보는 경향이 있었다면, 이제 정부가 하버드 교수들과 로즈 장학생 출신 학자들을 다시금 그렇게 적대시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지식인이 정치나 정부의 성공을 가로막는 장해물이 되었다는 의혹이 있기는 하지만, 새 대통령이 사상에 관심을 갖고 지식인을 존중하며, 국정 운영에서 이런 존중을 의례적 제스처를 통해 드러내고, 지식인을 가까이하고 그들에게 조언을 듣기를 즐기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랜 기간 신중히 가려 뽑은 출중한 인재들을 데리고 행정부를 출범시켰기에 이런 의혹은 곧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 한편 행정부가 이런 인재를 영입함으로써 국정을 완전히 쇄신할 수 있다는 과도한 자만심에 부풀어 있다 해도,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히 현실에 눈을 뜨게 될 것이다. 현재 우리는 지식인이 과장된 당파주의나 자기 연민 없이 반지성주의를 논할 수 있는 시점에 도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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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에 교육 논쟁이 정치적으로 끓어오르면서, ‘반지성주의’라는 용어는 미국에 대한 자기 평가의 중심을 이루는 어구가 되었다. 이 말은 뚜렷한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어느새 우리의 일상 언어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왔고, 달갑잖은 여러 현상을 가리키는 데 흔히 쓰이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이 말을 듣게 된 사람들은 반지성주의가 삶의 이런 저런 영역에 새롭게 출현한 현상 혹은 최근에 만들어진 환경의 산물일 것이라고 짐작하곤 한다.(이는 미국 지식인들의 역사 관념이 한숨이 나올 정도로 얄팍한 데다, 현대인이 일종의 묵시록의 그늘 밑에서 너무 오래 살아온 탓에 지식인들이 사회 변화의 조그만 소용돌이도 마치 커다란 격동인 양 바라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문헌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1950년대를 강타한 반지성주의라는 흐름은 전혀 새롭지 않고 익히 친숙한 것이었다. 이 나라에서 반지성주의는 1950년대에 처음으로 드러난 것이 아니다. 사실 우리의 반지성주의는 우리의 국가 정체성보다도 더 오래되었고, 긴 역사적 배경을 지니고 있다. 이 배경을 검토해 보면 미국에서 지식인에 대한 인식이 꾸준히 하락한 것도 아니고 어느 날 갑자기 땅에 떨어진 것도 아니며, 주기적으로 오르락내리락했음을 알 수 있다. 또 우리 시대 지식인들에게 쏟아진 분노는 지식인의 지위가 낮아졌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현저히 상승한 증거임을 알 수 있다. 이 모든 것에 대해 우리는 체계적으로 알지 못하며, 이 주제에 대해 역사적 자료를 근거로 한 고찰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미국의 지식인과 이 나라 사이의 오랜 불화에 대해 많은 문헌이 쓰였지만, 이런 문헌들은 지식인의 눈으로 본 미국에 대해 주로 다루고 있으며 미국의 눈으로 본 지성과 지식인에 대해서는 가끔씩 어렴풋이만 엿볼 수 있을 뿐이다.

의견

내가 이 책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2003-2004년쯤이었는데, 출판평론가 표정훈의 홈페이지(현재 궁리닷컴 홈페이지)를 통해서였다. 여기서 그는 이 책을 다음과 같이 짤막하게 소개했다. “호프스태터의 1963년 저작 Anti-Intellectualism in American Life (퓰리쳐상 수상작)는 반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미국 사회, 미국 지성의 풍토, 미국적인 것, 미국인의 정신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첩경이다. 반지성주의야말로 미국 문화, 미국 사회의 전반적인 특징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는데, 구체적으로는 지식인에 대한 비합리적일 정도의 경멸과 반감이 미국 사회의 저류에 흐르고 있다.”

마침 부시 행정부에서 한창 흘러나오던 비이성적인 언행에 질리고–저런 웃기지도 않는 사고방식이 도대체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와 세계 최강대국을 지배하게 된 것인지–의아했던 차라, 이 책이 그 의문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 읽어본 다음에는 정말 그 의문이 상당히 풀렸다.)

이 책의 내용은 앞에서 장황하게 설명했고, (지식인을 변호하려다 보니 엘리트주의적인 시각이 엿보이긴 하지만)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이니만큼 가치도 충분히 공인되어 있다. 케네디 대통령에 대한 장밋빛 기대나 비트족에 대한 신랄한 비판은 이 책이 쓰인 시대를 짐작케 하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놀랍게도 거의 낡아 보이지 않는다.

시장성에 대해서는 요즘 상황이 어려운 만큼 자신 있게 말하기 힘들다. 조선 왕조 이래로 엘리트 문관이 패권을 쥐어 온 한국 사회에서 미국 사회의 반지성주의는 다소 낯선 것이기도 하다. 부시 행정부 시기에 번역본이 나왔다면 아마 좀 더 시의성이 있었을 것이다.

다만 한 마디 보태자면, 비전문가인 독자 입장에서도 생각보다 읽기에 지루하지 않은 책이었다. 미국사에서 우리에게 덜 알려졌던 새롭고 흥미로운 사실과 통찰이 가득 들어있고, 영화나 책에서 단편적으로 봤던 미국 사회 단면(예를 들어 미국 틴에이저 영화 속의 학교에서는 왜 운동선수와 치어걸이 짱이고 우등생이 찐따 취급을 받는지, 왜 배관공 같은 육체노동자들이 심심찮게 섹시 아이콘으로 묘사되는지, ‘라떼 리버럴’이라는 말이 왜 욕이 되는지, 스테로이드를 맞은 조증 환자가 쓴 것 같은 미국산 자기 계발 서적이라든지, 왜 아직까지도 지구가 6천 년 전에 창조되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무시 못 할 세력을 떨치고 있는지, 한국 교회 풍경과 겹쳐져 왠지 낯설지 않은 미국의 대형 부흥 집회 장면이라든지)의 배경이 이해되면서 마치 퍼즐을 맞추는 듯한 재미가 있다. 문장은 호흡이 긴 만연체지만 난삽하지 않고 위트와 격조가 있다.

리처드 호프스태터–미국의 반지성주의”에 대한 4개의 생각

  1. 하나

    알고 싶었던 내용이 콕 짚어져 있는 책이라, 원서를 구해 더듬더듬 읽으면서 번역되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시도돼서 “빠꾸” 먹은 일이 있었군요. 시장성 생각 안하고 좋은 책을 소개한다는 사명으로 출판해주길 기대하기에는 지금 출판 시장이 너무 가혹하긴 하지요. 글, 반가운 마음으로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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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나영 글쓴이

      반갑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그래도 이 책에 관심을 보이는 분들이 은근히 많아서 머잖아 한국에 소개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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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지나던이

    좋은책 소개글 잘 봤습니다.
    지금은 2016년 11월 인데요.

    현재 국내 정치도 혼탁하고,
    미국은 반지성주의의 상징인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듯하네요.

    이 책을 다시 한번 번역 시도 하시는건 어떨까해요.
    지금의 현상을 설명 할 수 있는 좋은 책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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