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과 말’: 토머스 드 퀸시와 <예술 분과로서의 살인>

cc* 워크룸 총서 ‘제안들’ 출간 기념으로 2014년 2월 26일 북소사이어티에서 열린 ‘번역과 말’, 세 번째 행사 때 발표한 원고를 여기 올립니다.

8994207368_1안녕하세요. 토머스 드 퀸시의 <예술 분과로서의 살인>을 번역한 유나영입니다. 먼저 바쁘신 중에 귀한 시간 내어, 미세 먼지를 뚫고…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중에는 이 책을 읽으신 분도 있고 아직 못 읽으신 분도 계실 텐데, 편의상 읽지 않으셨다고 가정하고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버벅거릴 게 분명해서 원고를 적어왔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제 소개를 잠깐 드리면, 저는 원래 사회과학 출판사 편집자 출신으로 정치/사회 분야 책을 주로 번역해 왔습니다. 문학 번역을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래서 사실 이 책을 의뢰 받고 고심을 많이 했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토머스 드 퀸시 전공자도 아니고 또 영문학 전공자도 아니며, 그전까지 제가 드 퀸시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보르헤스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이름’이라는 것뿐이었습니다. 게다가 이 사람은 19세기 작가죠. 그중에서도 드 퀸시는 당대의 손꼽히는 스타일리스트로 이 사람의 문장은 현란한 장광설이 특징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의 글은 흔히 소용돌이나 미로에 비유되곤 하죠.6744508

그래서 저에게는 뛰어넘어야 할 높은 벽, 큰 도전으로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해볼 만한 도전이라고 생각했고, 무엇보다 작품 자체가 너무 매력적이었기 때문에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번역하는 과정은, 물론 힘들었지만, 일체의 다른 오락거리가 머리에 전혀 안 떠오를 정도로 흥미진진했습니다. 일하다가 머리에 김이 모락모락 솟아서 잠깐 머리 좀 식혀야지 하고 텔레비전 보다가도, ‘아니 내가 재밌는 걸 놔두고 이 지루한 걸 왜 보고 있지?’ 하고 그냥 꺼버리고선 다시 일하고.. 그랬습니다.

토머스 드 퀸시는 19세기 전반기에 영국에서 활동한 작가로, 소설도 몇 편 썼지만 그보다 에세이스트로 유명합니다. 국내에는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혹은 <어느 영국인 아편중독자의 고백>)을 통해서 소개되어 있는데요. 실제로 토머스 드 퀸시가 당대에 문필가로 명성을 얻은 것도 이 <아편쟁이의 고백>을 통해서였고, 영미권에서도 주로 ‘아편쟁이(Opium-eater)’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드 퀸시는 다양한 정기 간행물에 기고하는 필자로서 평생을 살았기 때문에, 엄청나게 방대한 양의 글을 남겼고—말년에 편집한 저작 선집이 14권짜리였으니까요.—또 대단히 광범위한 소재에 대해 글을 썼습니다. <아편쟁이의 고백> 같은 자서전적인 글도 많이 썼지만, 아주 많은 정치 평론과 시사 평론을 썼고, 콜리지와 워즈워스에 대한 그의 평론은 영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철학 특히 칸트 철학에도 조예가 깊었고 역사, 종교, 그리스와 라틴 고전에 대한 해박한 글들도 썼고, 외국 문학 작품의 번역도 했고, 폭력적이고 어두컴컴한 고딕 로맨스 소설도 몇 편 썼고, 심지어 리카도의 가치 이론에 대해 다룬 정치경제학 책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백과사전적인 방대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기도 했고요. 이 책만 해도 고전 인용이 굉장히 많이 나오죠.18332180

당대의 살인 사건에 대한 관심은 토머스 드 퀸시의 이런 여러 관심사 중 하나였습니다. 특히 이 책의 테마가 된 존 윌리엄스의 연쇄 살인 사건은 드 퀸시가 거의 병적으로 집착했던 소재였습니다. 이는 1811년, 아일랜드인 선원 존 윌리엄스가 런던 이스트엔드의 래트클리프 하이웨이에서 12일 간격으로 두 일가족을 잔혹하게 몰살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잭 더 리퍼가 출현하기 이전에 영국에서 일어난 가장 기억할 만한 연쇄 살인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피해자가 매춘부나 부랑자가 아니라 평범한 서민이었고, 길거리 뒷골목이 아닌 자기 집안에서 살해되었다는 점에서 당시 영국 전역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영국인의 집은 그의 성이다’라는 격언이 있죠. 이는 그 굳건한 믿음을 완전히 깨부순 사건이었습니다. 살인범인 존 윌리엄스는 범행 현장에 흘리고 달아난 흉기가 증거가 되어 검거되었고, 판결이 나기 전에 감방 안에서 스스로 목을 매 자살했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법에 따라 가슴에 말뚝이 박힌 채 도심의 사거리 밑에 매장되었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난 1811년 당시 드 퀸시는 스물 여섯 살 청년이었습니다. 드 퀸시의 글 중에서 윌리엄스 사건이 최초로 언급된 것은 바로 이 책에 첫 번째로 실린 ‘맥베스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입니다. 이 글이 발표된 때가 윌리엄스 사건이 있은 지 12년이 흐른 1823년, 드 퀸시가 서른 여덟 살 때입니다. 자, 그 다음으로 나오는 글이 <예술 분과로서의 살인>이죠. 이 글을 <블랙우즈 매거진>이라는 잡지에 처음 발표한 게 1827년, 드 퀸시가 마흔 두 살 때입니다. 이 글은 살인 사건을 예술적으로 감상하는 이른바 ‘살인 감상 협회’라는 가상의 협회에서 주최한 가상의 강연문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요. 이 강연의 제목이 ‘예술로서의 살인에 대한 윌리엄스 기념 강연’입니다. 하지만 윌리엄스 사건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짤막하게만 들어가고요, 주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살인 사건들을 풍자를 섞어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그 다음으로 1839년, 드 퀸시가 쉰 네 살 때 ‘<예술 분과로서의 살인>에 대한 두 번째 글’을 <블랙우즈 매거진>에 발표합니다. 이 글은 앞 글의 강연자였던 이 ‘살인 감상 협회’의 회장이 <블랙우즈 매거진> 편집장에게 보내는 편지글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요. 인도에서 ‘서그 암살단’이라는 대규모 강도 집단이 검거되어서 그 정체를 드러낸 것을 경축하여 ‘살인 감상 협회’에서 열었던 기념 만찬을 회고하는 내용입니다.16038383

자, 그 다음에 나오는 가장 긴 글, ‘<예술 분과로서의 살인>에 대한 후기’, 이것을 쓴 것이 1854년, 드 퀸시가 예순 아홉 살 때입니다. 죽음을 불과 5년 남겨 놓고 있을 때죠. 이때야 비로소 드 퀸시는 윌리엄스 살인 사건에 대한 자세한 기록을 남깁니다. 이 글에서 그는, 그로부터 43년 전 살인범 윌리엄스가 밟았던 길을 마치 르포 작가처럼, 혹은 스릴러 소설 작가처럼 한 발 한 발 숨가쁘게 뒤쫓아 갑니다. 마지막으로, 생전에 발표되지 않은 세 편의 짧은 수고는, 각각 드 퀸시가 1825년(마흔 살) 1828년(마흔 세 살) 1844년(쉰 아홉 살) 때 쓴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니까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드 퀸시가 청년 시절부터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평생에 걸쳐 써 나간 것입니다. 하지만 그냥 읽으면, 이 모든 글들이 마치 일주일 간격으로 연재된 것 같은 인상을 줍니다. 이건 정말 집요하다고밖에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는 왜 그렇게 이 잔혹한 살인 사건에 집착했을까요? 우선 당시의 사회적 배경을 들 수 있습니다. 19세기 당시의 영국에는 이미 잔혹한 살인 사건에 열광하는 대중들이 있었고 이들의 수요에 맞춘 옐로 저널리즘과 선정적인 범죄 소설과 연극들이 존재했습니다. 어떤 소설은 시리즈로 매주 연재해 가며 출간되었는데 주마다 4만 부씩이 팔려나갔다고 합니다.

13607141드 퀸시 자신도 이런 시류에 한몫 했습니다. 드 퀸시는 <웨스트몰랜드 가제트>라는 신문의 편집장을 잠시 지낸 적이 있는데요. 이때 신문 지면을 살인 사건의 재판 보고서, 자살, 강간, 아편, 이상하고 기이한 사건 소식들로 가득 채웠습니다. 예를 들면 메리 셸리가 <프랑켄슈타인>을 발표하고 불과 몇 달 뒤에, ‘살인범의 시체를 전기 충격으로 되살리는 실험’에 대한 상세한 기사를 싣기도 했습니다. 한 글에서 드 퀸시는 그것을 이렇게 변명했습니다. ‘(살인 사건을 다루는 이유는) 첫 번째는 이것들이 흥미롭기 때문이고, 둘째는 교육받지 못한 계층에게 사회적 의무를 가르치기 위해서이고, 셋째는 이것이 우리 사회의 윤리적 상황을 가장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별로 설득력 있는 변명은 아니죠.

드 퀸시의 살인 에세이 또한 고급 문학(high literature)의 탈을 쓰고 있지만 현학적인 고전 인용과 젠체하는 문체를 걷어 내고 보면 당시의 이런 싸구려 범죄 소설이나 선정적 신문 보도와 공통점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 시대 유행했던 범죄 소설의 조류는 범죄자를 사회 모순의 희생양이자 전복적 영웅으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분명히 정치적 알레고리를 띠고 있었고, 한 발 더 나아가 사법 개혁을 촉구하기 위해 집필된 것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드 퀸시는 살인범의 동기에 대한 합리적 분석이나, 살인범의 개인사와 내면이나, 그를 범죄자로 만든 사회 구조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11369911

그러면 드 퀸시가 관심 있던 것은 무엇이었는가? 바로 살인 그 자체의 순수한 미적 가치였죠. 드 퀸시가 찬미한 윌리엄스의 예술성은 바로 “과잉과 낭비”에 있었습니다. 또 19세기 산업혁명과 함께 도래한 가차 없는 시간 규율 속에서, 한 순간을 낚아채어 공포의 순간으로 영구히 박제하는 능력에 있었습니다. 한 글에서 드 퀸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 비극을 주재하는 힘은 죽음이다. 위대한 죽음의 한 순간을 그 순간에 영구히 얼어붙게 만드는 것은 그리스 조각과 그리스 비극의 미학적 특성이다.” 그것을 생생히 보여주는 한 예가 라오콘 상입니다. 아폴로 신전의 사제 라오콘이 커다란 뱀에 물려 죽는 순간을 장엄하게 묘사한 조각이죠. 여기에는 그리스 비극의 미적 이상으로 돌아가려는 욕망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 이는 드 퀸시가 심취해 있었던 칸트 철학의 숭고미(sublime) 개념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는 예쁘고 아름다운 것을 보고도 감동받지만 무섭고 두려운 것을 보고도 감동을 받습니다. 예를 들어 깎아지른 듯한 절벽, 뜨거운 용암이 분출하는 화산, 바닥이 없을 것 같은 검푸른 바다와 광막한 우주…. 이런 압도적이고 무시무시한 것들에도 우리는 매료됩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그 두려운 대상이 우리에게 직접 해를 끼치지 않을 만큼 멀찍이 있어야만 합니다.) 드 퀸시는 살인이라는 무시무시한 행위도 안전한 거리에서 멀찍이 놓고 봤을 때는 우리 마음에 미적 감흥을 일으킨다고 한 것입니다. (자, 폭풍우 치는 밤 난롯가 소파에 푹 파묻혀서 책을 읽는다고 할 때 여러분은 무슨 책을 택하시겠습니까? 당연히 오싹한 살인 사건이 등장하는 추리 소설을 읽습니다. 이보다 더 안락하면서 짜릿한 쾌락이 있을까요?)

17974594그럼 그런 미적 감흥을 드 퀸시는 어떻게 글로 재현했는가? 살인의 위협에 압도되어 모든 것이 정지한 공포의 순간과, 그 순간이 끝나고 정지한 모든 것들이 갑자기 움직이며 일상이 되돌아오는 순간을 극적으로 대비시킵니다. 살인범이 집안에서 살인을 막 끝냈을 때 심부름 나간 하녀가 돌아와서 문을 두드리는 순간, 비명 소리를 듣고 계단을 내려온 직공이 일가족을 몰살한 살인범의 뒷모습을 목격하고 몸이 얼어붙는 순간—이 공포의 순간에 모든 사고와 움직임은 정지됩니다. 드 퀸시는 의도적으로 이 시간을 길~게 늘려서 자세히 묘사해 놓았습니다. 그 뒤, 하녀의 절규로 이웃 사람들이 달려옵니다. 직공이 극적으로 탈출하여 위급을 소리쳐 알리자 성난 군중들이 살인범을 잡으러 밀물처럼 몰려옵니다. 공포의 시간이 끝나고 일상의 시간이 역류하는 것입니다. 이 두 상황의 극적 대비가 내는 시적 효과에 대해서는 <맥베스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에 압축적으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는 드 퀸시의 다른 글(영국의 우편 마차)에서도 반복해서 나타나는 모티프입니다. 이는 아편 중독의 부작용으로 극단적 흥분과 극단적 무기력 상태를 오갔던 드 퀸시의 체험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살인범 존 윌리엄스가 실제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아마 그다지 흥미로운 인물은 못되었을 것입니다. 그는 폭력적이고 충동적인 성향이 있는 아일랜드 청년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드 퀸시의 글에서 윌리엄스는 불가해하고 순수한 악마로 묘사됩니다. 그는 오렌지색 머리에 창백한 가면 같은 얼굴을 하고 있고, 인도에서 체류한 경력 탓에 신비하면서도 불길한 동양적인 분위기를 띠고 있습니다. 심지어 드 퀸시는 그를 지진에 빗대며 자연의 힘에 비견하기도 합니다. 그 뒤 살인범은 가슴에 말뚝이 박혀 묻힘으로써 희생 의례의 제물이 됩니다. 공동체는 그를 단죄하고 축출, 희생시킴으로써 단결되고 정화됩니다. 드 퀸시는 범죄를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연행되어야 할 의례로서 다루고 있는 것이죠. 이는 문제에 대한 매우 보수주의적인 접근 방식입니다. 드 퀸시는 뿌리 깊은 보수 성향을 가진 인물이었고 이는 그가 살인을 다루는 방식에도 반영되어 있습니다.3698553

드 퀸시가 편집장을 맡았던 <웨스트몰랜드 가제트>는 보수당의 전신인 토리당 계열의 신문으로 모든 종류의 개혁을 거세게 비판하고 현 상태를 옹호하는 논조를 띠었습니다. 또 드 퀸시가 주로 기고한 문예지 <블랙우즈 매거진>은, 정치적으로는 보수주의를 예술적으로는 급진주의를 표방하고 있었죠. 이 잡지에는 대단히 공격적이고 방종하기까지 한 풍자글들이 많이 실렸습니다. 이런 태도에는 순수한 미적 쾌락, 자유롭고 무책임한 쾌락의 영역을 일상 정치와 분리된 자율적인 공간으로 보존하고 봉인하려는 욕망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말이 길어졌는데 다시 드 퀸시가 죽음과 살인에 집착하게 된 배경으로 돌아와서…. 이번에는 드 퀸시의 자전적 배경을 이야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드 퀸시는 7살 때 당시 9살이던 친한 누이를 병으로 잃었고 또 10살 때는 아버지를 여의었는데, 특히 누이의 죽음은 드 퀸시에게 깊은 상흔을 남겼습니다. 드 퀸시는 이때의 충격으로 평생 동안 죽음에 집착하게 되었고, 기괴한 환영을 보기 시작했고, 그 고통을 잊기 위해 아편을 복용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성공한 직물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유복한 가정 환경에서 자랐고, 교육도 잘 받았고 우등생으로 옥스퍼드까지 진학했지만 어려서 죽어 버린 누이 외에는 그 어떤 가족과도 마음을 나눌 수 없었기에 외롭고 조숙한 어린 시절을 보냈죠. 아버지는 거의 얼굴을 볼 수 없었던 데다 일찍 세상을 떴고, 그의 어머니는 대단히 완고한 복음주의 기독교 신자로 자녀들에게 매우 엄격하고 냉정한 사람이었습니다. 드 퀸시는 다른 글에서 자기가 어머니와의 소통이 불가능했으며, 어머니 앞에서 어린 시절의 자신이 절망적인 무력감을 느꼈다고 쓰고 있습니다. <아편쟁이의 고백>에도 나오지만 드 퀸시는 청소년기에 어머니와 후견인들에 대한 반항의 표시로 학교를 때려치우고 집을 뛰쳐나와 런던을 방황하며 굶주려 죽을 뻔합니다.

15778846여기까지 말하면 짐작하시겠지만 드 퀸시는 문제가 많은 인물이었습니다. 아편 중독자였고, 살인과 죽음에 병적으로 집착했고, 외국인과 하층 계급에 대한 편견에 가득 찬 완고한 보수주의자였고, 무엇 하나 제대로 끝을 맺질 못했고—대학도 중도에 뛰쳐나왔고, 심지어 기고하는 연재물도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했죠—금전 관리에는 완전히 빵점이라 평생을 빚쟁이한테서 도망다녔죠. 기벽도 많았는데요. 일례로 아주 작은 메모 조각 하나까지 버리지 못하고, 정리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책상, 의자, 침대, 바닥까지 책과 종이로 꽉 차서 운신을 못할 정도가 되면, 그 집의 문을 그냥 잠가 버리고 다른 숙소를 구해 나가는 식으로 숙소를 전전했죠. 드 퀸시가 죽고 난 뒤 최소한 여섯 군데의 숙소가 이런 상태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벽, 개인적 트라우마, 빈곤, 중독 성향, 지극히 예민한 성정과 번득이는 두뇌, 이렇게 ‘세상 사람들에게 이해 받지 못한 괴팍한 천재’의 이미지는 그를 대단히 매력적인 캐릭터로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에드거 앨런 포가 드 퀸시를 동경하고 그를 모델로 최초의 탐정 오귀스트 뒤팽을 창조한 것도 무리가 아니죠.[1] 그의 이러한 개성은 오귀스트 뒤팽과 셜록 홈즈에게로 이어지는 고전적 탐정 캐릭터의 원형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또 살인 사건을 그 사회적/윤리적 맥락에서 분리하여 그 자체로서 순수한 미적 구조물 혹은 지적 구조물로 취급하는 태도는 모든 추리소설의 전제가 된다는 면에서, 그의 글은 현대적 추리소설이 탄생할 기본 조건을 마련해 주었습니다.8206501

수많은 후대 작가들이 그의 글과 캐릭터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드 퀸시의 글에서 직접 영향을 받은 유명 작가들의 목록은 보들레르, 에드거 앨런 포, 찰스 디킨스, 코난 도일, G.K. 체스터턴, 버지니아 울프,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보르헤스, 영화작가로는 앨프리드 히치콕, 나아가 연쇄 살인마와 범죄가 등장하는 오늘날의 모든 소설과 영상 작품에까지 이어집니다.

에드거 앨런 포와 조지 오웰이 드 퀸시의 <예술 분과로서의 살인>을 오마주해서 쓴 짤막한 글이 있습니다. 에드거 앨런 포가 쓴 것은 <정밀 과학의 한 분과로서의 사기치기(Diddling Considered as one of the exact Sciences)>라는 건데, 사기를 치기 위해 갖춰야 할 미덕을 열거하고 사기 치는 수법을 종류별로 정밀하게 분류하는 내용이고요, 조지 오웰의 글은 <영국 살인의 쇠락(Decline of the English Murder)>이라는 건데 당시 그러니까 1940년대 영국에서 일어나는 살인 사건들이 별로 볼 만한 게 없다고 불평하는 내용입니다. 둘 다 풍자적이고 익살이 섞인 글입니다. 편집자님이 평범한 번역 후기는 안 된다고 하셔서 고민하다가, 이 책에서 드 퀸시도 발랄하게 갔으니 후기도 발랄하게 가 보자, 해서 이 두 글을 번역해서 그냥 후기로 대신하면 어떨까요 하고 나름 꼼수를 써봤는데요, 편집자님께서 말씀하시길, ‘아주 좋습니다. 그런데 그 두 편의 글에 덧붙여, 에드거 앨런 포와 조지 오웰이 했듯이 드 퀸시의 <살인> 에세이를 오마주한 글을 한 편 더 써 주시면 어떨까요’ 하시는 바람에 그만 독박을 뒤집어 쓰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이 여기 실린 후기입니다. 하지만 다행히 드 퀸시의 화법을 패러디한 히치콕의 짧은 연설문을 찾아서, 포와 오웰의 글은 따로 안 실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책에 대한 소개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독자 질문]
1. 특정 장르/분야의 글을 번역할 때 그 장르 언어에 익숙하기 위해 따로 뭔가를 하시는지요?
: 그 분야의 언어에 익숙해지려면 일단 번역을 시작하기 전에 책을 완독하여 그 책의 전체 맥락과 분위기에 익숙해지는 일이 필수입니다. 작업하는 도중에 배경 지식을 얻기 위한 독서를 병행하는 일도 많습니다. 저자의 다른 책들도 찾아서 읽고, 특히 번역서에 인용된 책들을 찾아 앞뒤 맥락을 확인하는 일은 반드시 합니다. <007 제임스 본드의 과학>이라는 책을 번역할 때는 그때까지 나온 모든 제임스 본드 영화들을 보았습니다. 이건 그 책을 번역하는 데 필수였습니다.

97649012. 책을 번역할 때 가장 곤란했던 점과 가장 신경을 썼던 점은? 저자 특유의 문장들을 한국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어떤 점에 주의했고 어떤 점이 특히 어려웠는지 궁금합니다.
: 곤란했던 점은 역시 드 퀸시 특유의 길고 난한 문장들이었죠. 단어들도 요즘에는 잘 사용되지 않는 문어투나 고어체 용법으로 쓰인 것들이 많고요… 만약 적당한 풀이를 영한사전에서 찾을 수 없을 때는 OED(Oxford English Dictionary)를 뒤졌습니다. OED는 그 영어 단어가 처음 문헌에 등장한 시기부터의 의미 변천사를 다 볼 수 있게 해 놓았죠. 영어사전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OED의 예문 검색창에서 저자 이름 ‘Thomas de Quincey’를 치면 예문이 1천 개가 넘게 나옵니다. 그걸 다시 연도순으로 정렬하면 지금 내가 번역하는 바로 그 글에 수록된 예문들을 최소한 수십 개는 건질 수 있습니다. 그중에는 드 퀸시 자신이 만들어낸 단어, 혹은 최초로 특수한 의미를 부여한 단어들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드 퀸시는 ‘subconscious’ 즉 ‘잠재의식’이라는 단어를 처음 만들어낸 인물입니다. 프로이트의 이론이 나오기 반세기 이전에 말이죠. 또 ‘clue’라는 단어를 현대 추리소설에서 쓰는 대로 미스터리를 푸는 ‘단서’라는 의미로 사용한 최초의 범죄 소설 작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 선대와 동시대의 여러 편집자들이 달아놓은 상세한 주석도 있고, 또 일역본과 불역본도 나와 있어서 이것들을 참고하여 대부분의 난관을 헤쳐 나올 수 있었습니다.

3. 드 퀸시의 책은 국내에서 2번 번역되어 나왔는데요, 이번 번역에서 중점을 둔 부분 혹은 차별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6940803
: 드 퀸시의 대표작이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시공사)과 <어느 영국인 아편중독자의 고백>(펭귄북스)의 두 가지 번역본으로 나와 있죠. 이것과 특별히 차별점을 둬야겠다고 의식하고 작업하지는 않았습니다. 우선 이 <살인>과 <고백>은 서로 전혀 성격이 다릅니다. 저는 <살인> 번역을 시작하기 전에 <고백>을 읽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약간 지루했습니다. 젊은 시절 런던에서 떠돌며 메리와 만나는 부분이나 뒤에 가서 기괴한 환상이 펼쳐지는 부분은 좋은데, 아편에 대해 이야기한 모든 부분들, 아편을 몇 온스 먹었고 끊으려고 뭘 했고… 자기가 왜 아편을 복용했는지 구구절절 변명하는 부분이 제겐 좀 구차하게 들렸어요… 드 퀸시의 캐릭터와 문체에 익숙해진 지금 다시 읽으면 훨씬 더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근데 <살인>은, 아까도 얘기했지만 작업 시작할 때부터 완전 신나고 재밌었어요. 작업 기간이 얼마나 걸리나 재보려고 첫 글 <맥베스>를 시험 삼아 해봤는데 그때부터 벌써 머릿속에서 둥! 하고 종이 울리더라고요. 그러고 나서 작업 끝날 때까지 그렇게 하이한 상태로 쭉 갔습니다. 아마 살인이라는 자극적인 소재에 드 퀸시 특유의 장광설과 비틀린 유머 감각이 결합해서, 또 그것이 저 자신의 취향과 궁합이 잘 맞아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 것 같습니다.

4. 번역 작업을 할 때 출발어에 대한 ‘충실함’과 도착어의 창조적 독립 사이에서 많이 갈등하는 편인지, 그렇다면/그렇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1583083: 여기서 ‘충실함’의 정의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답변이 달라질 것 같은데요. 여기서 단어 하나하나를 품사 그대로 옮기고 문장 구조와 어순을 보존하는 것이 ‘충실한’ 번역이라고 본다면 그것은 음… 번역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거칠게 말해, 저는 한 문장 단위에서 저자가 전달하려는 의미가 자연스러운 한국어 문장으로 오롯이 옮겨졌다면 충실한 번역이라고 봅니다. (생각은 이렇게 하지만, 제가 번역할 때 정말로 문장을 막 해체해서 재조립하는 일은 드뭅니다. 사실 그건 굉장히 품이 많이 드는 일이기 때문에…) 또 이번 드 퀸시 책처럼 문학 작품의 경우는 문체가 주는 느낌까지—물론 100퍼센트 전달은 힘들겠지만–전달해 주어야겠죠. 그런 의미의 충실함을 전제한다면, 저는 창조적 독립보다는 충실함 쪽으로 확실히 더 기웁니다. 이건 전적으로 번역자 개인의 성향에 따라 갈리는 문젠데요. 제 경우는 아직 저 자신에게 번역’가’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이 낯간지럽습니다. 진짜 번역가는 배수아, 성귀수 선생님 같은 분들이죠. 그분들은 번역가이기 이전에 이미 작가, 즉 창작자셨으니까요. 저는 애초에 편집자로 출발했기 때문에 아직도 편집자로서의 마인드가 기본으로 장착돼 있고, ‘나는 편집자와 협업하여 책을 만드는 스태프의 일원으로서의 번역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번역도 제 개성을 최소한으로 드러내고 저자의 개성을 최대한 살려 주는 쪽으로 작업하려고 노력합니다.

끝으로, 저는 특히 범죄-추리-스릴러 장르 독자분들이 이 책을 많이 읽어 주시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을 품고 있습니다. 그리고 읽으시다가 오역이나 표기 오류 등을 발견하신 독자분은, 제 홈페이지에 정오표 란을 마련해 놓았으니 댓글로 신고해 주시면 추첨을 통해 사은품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제 홈페이지 주소는 역자 소개글 맨 뒤에 쓰여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1. 드 퀸시의 캐릭터와 뒤팽의 공통점: “저명한 집안 출신이지만 잇따른 불운으로 가난하게” 됨. “책이 그의 유일한 사치품”이며 “광범위한 독서가”로 대단히 박식하고, “공상벽”과 몽상가 기질이 있음. 밤마다 나와서 거리를 산책하는 습관이 있음. 논리적이지만 직관이 뛰어남. 살인과 죽음에 대해 비상한 흥미를 품고 있음. 프로를 능가하는 아마추어.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으며 변덕과 기벽의 소유자. 어떤 평자는 포의 <도둑맞은 편지>가, 드 퀸시가 콜리지의 표절 혐의를 조사하여 폭로한 일화와 모티브를 공유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함. 실제로 드 퀸시는 당시 신문에 보도된 살인 사건들의 기사를 보고 추리하여 범인을 찾아내는 게임을 즐겼고, 때로는 경찰보다 먼저 범인을 맞추기도 했음.

 

‘번역과 말’: 토머스 드 퀸시와 <예술 분과로서의 살인>”에 대한 2개의 생각

  1. 조현수

    잘 읽었습니다. 읽으면서 이 글이 『예술 분과로서의 살인』에 수록되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ㅎ;

    이 글에서 오탈자 하나가 보이네요.

    “책의 그의 유일한 사치품” → “책은(‘이’도 될 듯하나 역시 ‘은’이 좀 더) 그의 유일한 사치품”

    그리고 『예술 분과~』 272쪽에서는 ‘체스터턴’이라고 되어있는데, 본 글에서는 ‘체스터튼’이라고 되어있네요. ‘턴’은 편집자의 교정, ‘튼’은 유나영 님의 글인 건가. 음.

    글을 읽고 오탈자 제보 하는 것도 독자가 챙길 수 있는 꿀잼 요소인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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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나영 글쓴이

      지적하신 부분을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제안들’ 시리즈가 완간된 이후에 그동안의 ‘번역과 말’ 행사에서 오간 이야기들이 독립된 책으로 묶여 나올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만약 그런 책이 나온다면 이 원고는 아마 거기에 수록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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