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된 생명: 중세 문화의 고통, 쾌락, 형벌(3)

2장 살가죽 벗기기

[도판 1] ‘시삼네스의 체포’, 헤라르트 다비트(Gerard David), 의 왼쪽 패널, 1498년, 나무 패널에 유채. 흐루닝에 미술관, 브뤼헤.

[도판 1] ‘시삼네스의 체포’, 헤라르트 다비트, <캄뷔세스의 재판>의 왼쪽 패널, 1498년, 나무 패널에 유채. 흐루닝에 미술관, 브뤼헤.

‘시삼네스의 처형’, 헤라르트 다비트, 의 오른쪽 패널.

[도판 2] ‘시삼네스의 처형’, 헤라르트 다비트, <캄뷔세스의 재판>의 오른쪽 패널, 1498년, 나무 패널에 유채. 흐루닝에 미술관, 브뤼헤.

1498년 브뤼헤 시청의 ‘정의의 홀’에 설치된 헤라르트 다비트(Gerard David)의 <캄뷔세스 왕의 재판>(도판 1, 2)은, 이제껏 가장 주목을 끌면서도 아마도 가장 이해받지 못한 이미지―중세 후기로부터 이어 내려온 형벌의 잔재―를 담고 있다. 이 그림은 헤로도토스의 <역사(Historiae)>에 처음 기록된 고대 페르시아의 전설로서, 캄뷔세스 왕의 명으로 부패한 판사인 시삼네스의 살가죽을 벗기는 모습을 두 개의 패널에 묘사하고 있다. 이 이야기의 중세 판본은 오리엔트를 비롯한 각지의 전설 및 고전 우화 모음집인 <게스타 로마노룸(Gesta Romanorum, ‘로마인의 업적’)>에 실렸는데, … <게스타>의 29장에는 어떤 판사가 거액의 뇌물을 받고 부정 판결을 내린 이야기가 들어 있다. 그러한 편파적인 법 집행을 너그러이 받아들이지 않았던 황제는 판사의 가죽을 산 채로 벗기라는 명을 내렸다.

그 판결은 즉시 집행되었고, 혐의자의 살가죽은 비슷한 죄를 저지르지 말라는 무시무시한 경고의 의미로서 재판관의 의자 위에 깔리게 되었다. 그 후 황제는 죽은 판사의 아들에게 같은 직위를 수여하고 재판관에 임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정의를 집행하기 위해, 그대는 범법을 저지른 그대의 아비의 살가죽 위에 앉을 것이다. 누구라도 그대를 악한 길로 인도하는 자는 그의 운명을 기억해야 하리라. 그대 아비의 살가죽을 내려다보면서 아비의 운명이 그대에게 떨어지지 않도록 명심하여라.’

다비트의 두폭화(diptych)는 이 전설에서 네 개의 에피소드를 뽑아 재현하고 있다. 좌측 패널의 뒷배경에는 부패한 판사가 뇌물을 수수하는 장면이(도판 3), 전면에는 그가 캄뷔세스 왕에 의해 극적으로 체포되는 장면이(도판 1) 담겨 있다. 우측 패널에서 우리는 시삼네스의 살갗을 벗기는 소름끼치는 공개 처형 장면(도판 2)과 마주하며, 우측 위편 구석에서 이 이야기의 교훈―판사의 아들인 오타네스가 자기 아버지의 살가죽을 덮은 의자에 앉아 법을 집행하는 장면―을(도판 4) 엿볼 수 있다.

[도판 3] 도판 1의 세부. 뇌물을 수수하는 시삼네스.

[도판 3] 도판 1의 세부. 뇌물을 수수하는 시삼네스.

[도판 4] 도판 2의 세부. 법을 집행하는 시삼네스의 아들 오타네스.

[도판 4] 도판 2의 세부. 법을 집행하는 시삼네스의 아들 오타네스.

…다비트가 이 주제를 다룬 방식의 인상적이고도 독특한 점은, 오타네스가 자기 아버지의 살가죽으로 덮인 의자에 앉는 마지막 에피소드에 집중한 그 이후의 재현물과는 달리, 이 브뤼헤 패널화가 화폭 대부분을 시삼네스 자신의 체포와 처형 장면에 할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중세 후기 네덜란드 회화의 독특한 특성을 단순히 사실 그대로를 모방하는 미학으로 치부해 버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앞으로도 보겠지만, 소위 다비트의 회화의 리얼리즘은 물질적 현실을 객관적으로 구체화한 것이 전혀 아니다. 그러나 이 작품이 불러일으키는 효과는 의심의 여지없이 강력하다. 내가 이 두폭화에 대해 대중 앞에서 강의할 기회가 있을 때 그 두 번째 패널을 학생들에게 보여 주면, 무서워서 반쯤 눈을 가리는 사람들이 최소한 몇 명씩은 있다.

… 현대 관람객들의 눈은 대부분 오른편 패널에 있는 사형수의 절개된 육체에 매료되는 동시에 혐오감을 느낀다. 이 작품이 현재 전시된 브뤼헤의 갤러리 안에 서서 관광객들이 줄 지어 지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면, 공포스런 매혹에 사로잡혀 그 자리에 꼼짝 않고 못 박혀 있거나, 충격을 받고 당황해서 슬그머니 지나쳐 버리거나 둘 중 하나이다(그들은 예쁜 그림을 보면서 한가한 오후를 보내려고 온 것이다). 현대의 감상자들에게는 아무래도 살가죽을 벗기는 장면이 그림에서 가장 심기가 불편한 부분인 것 같다. 이 작품에 대한 미술사학자들의 논의에서도 (비록 무시되긴 하지만) 은연중에 비슷한 반응이 엿보인다. 미술사 논저에서 이 그림은 칼라로 실리는 일이 드물고, 비체적 공포의 체현물로보다는 15세기 후반 회화의 보편적인 양식과 구성의 발전을 보여 주는 하나의 지표로서 다루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W. H. 제임스 윌(W. H. James Weale)이 다비트의 작품에 대해 쓴 최초의 연구 논문에서도 “사람의 피부를 발라내는 것은 당연히 보기 즐거운 일이 아니지만, 화가 자신이 이 주제를 스스로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라고 강조하는 등 비슷한 불안감이 엿보인다.[1]

… 다비트의 <캄뷔세스 왕의 재판>을 수용해 온 역사를 보면 그런 식의 방어적 반응으로 점철되어 있으며, 사형수의 육체를 보는 것에 대해 끈질긴 거부 반응이 있는 것 같다. 주변 맥락에서 떨어져 나온 육체란 근본적으로 두려운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역사 연구는 그렇게 강렬한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사료와는 친숙해지기가 힘들다…그럼에도 유독 시삼네스의 육체로 눈길을 돌림으로써, 게다가 그것이 중세의 관람객들에게 미친 상상적·상징적 반향을 분석의 뼈대로 삼아, 나는 이 그림의 충격적이고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차원을 숙고하고자 한다…

피부의 의미

<캄뷔세스>의 이미지에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상징적 내용물은 무엇일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피부를 제거하는 형벌 그 자체의 성격이다. 피부는 신체가 점하는 공간적 범위의 한계선이자, 내부 장기를 감싸고 이것들을 충격에서 보호하는 표면이다. 동시에 특정한 의미를 띤 흔적을 새겨 넣을 수 있는 표면이자, 외부 세계와 내부의 감각을 중재하는 감각적 문지방이다.

… 중세의 종교적 텍스트에서 피부는 옷이라는 은유를 통해 구성되기도 하였다. 예컨대 시인들은 그리스도의 피부를 ‘입었다’고 상상했다… 보다 세속적인 맥락에서 나온 문학 작품으로 눈길을 돌려도 피부는 역시 강한 헌신의 대상이다. 중세의 연애 서사에서 여성의 신체에 대한 묘사에는 매혹적인 피부에 대한 언급이 상투적으로 들어 있다. 반대로 병에 걸리거나 훼손된 피부는 혐오, 구토, 반발과 공포의 대상이다. 특히 나병으로 인한 피부병은 도덕적 결함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중세의 나병 환자들은 시신을 매장하는 의례와 유사한 분리 의례를 거쳐야 했다. 훼손되지 않은 신체 표면이야말로 이승에서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조건이었던 것이다. 중세의 처형 절차에도 죄수의 사회적 죽음을 상징하여 희생자의 의복을 벗기는 과정이 있었는데 이는 전도(轉倒)의 의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신체를 감싼 의복의 한계치인 피부 자체를 제거해 버리는 것보다 더 두려운 일이 있을까? 피부는 곧 기억이라는 중세의 관념에 따르면, 산 채로 살갗을 벗기는 행위는 일시적 기억과 정체성이 쓰여진 신체의 표면을 떼어 없애고 그 자리(죽은 피부)에 ‘영구적인’ 교훈이 새겨진 양피지를 바르는 것이다.

[도판 5] 대(大) 루카스 크라나흐의 공방, , 1540년경, 패널에 유채, 베를린 국립박물관(회화 갤러리).

[도판 5] 대(大) 루카스 크라나흐의 공방, <캄뷔세스의 재판>, 1540년경, 패널에 유채, 베를린 국립박물관(회화 갤러리).

따라서 다비트의 그림은 고통 받는 신체가 하나의 이데올로기적 객체가 되는 과정을 잔인할 정도로 똑똑히 드러내고 있다. 시삼네스의 처형을 목격하는 이들은 살갗을 벗기는 행위가 비체성(脾體性)의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한편, 그 결과 생명 없는 물체에 교훈이 담기게 된다는 양 극단의 모순을 중재해야 한다…시삼네스의 살가죽이 법 집행의 물리적인 지지대로 활용되는 캄뷔세스 신화의 마지막 에피소드 또한 비슷한 효과를 낸다. 여기서 경계[피부―옮긴이]는 문자 그대로 하나의 객체가 된다…루카스 크라나흐(Lucas Cranach the Elder)의 1540년경 패널화에서는 살갗을 벗기는 장면이 원경으로 처리되고 살가죽이 오타네스의 머리 위에 위협적으로 걸려 있다(도판 5)…이러한 이미지에서 시삼네스의 살가죽에는 눈구멍이나 손가락, 발가락, 머리카락, 귓바퀴 등 예전에 달려 있었던 신체 일부분의 흔적이─마치 파괴된 줄 알았던 정체성을 외부로 표현하듯이─남아 있다. 시삼네스가 뇌물을 수수함으로써 정치체의 경계선을 범한 것처럼, 그 자신의 신체의 경계를 거스름으로서 위반 행위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 다비트는 벗겨진 피부를 단순명료한 표면으로 묘사하였다(도판 4). 피부는 차라리 양피지를 만드는 데 쓰려고 매끈하게 다듬은 가죽에 가깝고, 인간의 신체임을 연상시키는 세부 묘사는 거의 없다. 따라서 다비트의 그림에서 피부의 위상은 비체성과 추상성 사이에서 동요한다. … 시삼네스의 운명은 신체 절단에 대한 중세의 뿌리 깊은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한편, 동시에 그의 분리된 신체가 기억과 교훈적 진실을 뒷받침하는 힘을 지녔음을 가리키기도 한다.

‘공민적’ 미학

이러한 추론으로 살갗을 벗기는 모티프의 상징적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다비트의 작품을 그토록 공포스럽게 만드는 특정한 심미적 자질을 설명해 낼 수는 없다. 그러한 반응을 이끌어내는 동시에 차단하는 시각적 전략은 무엇인가?

[도판 6] 도판 2의 세부, 껍질이 벗겨지는 시삼네스의 팔.

[도판 6] 도판 2의 세부, 껍질이 벗겨지는 시삼네스의 팔.

[도판 7] 도판 2의 세부, 시삼네스의 찡그린 얼굴.

[도판 7] 도판 2의 세부, 시삼네스의 찡그린 얼굴.

…시삼네스의 신체를 연출한 방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화가가 신체의 세부를 놀랍도록, 거의 현학적일 정도로 정밀하게 묘사했음을 알 수 있다. 희생자의 몸에 나 있는 모든 털들은─다리털, 음모, 심지어 젖꼭지와 겨드랑이 주변의 몇 가닥 털까지─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시삼네스의 팔에는 정맥이 뚜렷이 드러나 있고, 손목 주위의 살가죽은 밧줄로 단단히 묶여 밀려 있다.(도판 6) 그의 얼굴은 주름이 잡히고 목의 혈관은 도드라져 있다.(도판 7) 그렇다고 이 이미지가 ‘사실주의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이 그림의 논리는 그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달성하기 위해 강한 심미적 요소가 들어있거나 혹은 상징적 덧칠이 되어 있다. … 다비트의 <캄뷔세스>의 우측 패널이 내게 가장 충격적인 것은 시삼네스의 몸을 묘사한 자연주의가 아니라, 이 그림이 취한 구성의 엄격성이 나 자신의 유동적이고 진행 중인 신체 경험에 들이대는 공격적 느낌이다. 그로 인해 나는 신체적 경험의 경계선, 죽음의 한계와 직면하게 되기 때문이다.

[도판 8] 도판 2의 세부, 껍질이 벗겨지는 시삼네스의 다리.

[도판 8] 도판 2의 세부, 껍질이 벗겨지는 시삼네스의 다리.

그림 속의 형리들이 마치 필경사처럼 정확하게 각자의 일을 수행하고 있는 것은 그런 느낌을 요한다. 그들이 마치 팽팽한 무명천 같은 판사의 피부를 째는 광경을 바라보자면 내 뱃속에서는 욕지기나는 느낌이 올라온다. 시삼네스의 왼쪽 다리에서 얇게 저며 낸 피부는 발꿈치까지 완벽한 직선으로 당겨져 있고 그 가장자리 부분에 자연광이 닿아 희게 빛나는데, 자연스런 곡선을 이루려는 인체의 성질을 거스르는 이러한 표현 방식은 보는 사람을 매우 불편하게 만든다. 다리에서 벗겨 낸 살가죽은 팽팽히 당겨져 마치 접힌 부채처럼 곧은 주름이 서너 개 뭉쳐 있다.(도판 8)

의미심장하게도, 이런 식의 표현은 15~16세기 외과학 참고서의 삽화를 연상시킨다. 여기에 보면 외과 수술용 칼로 ‘살가죽 옷’을 깔끔하게 잘라 내거나, 살갗을 발라낸 신체가 한 손에 칼을 들고 한 손엔 자신의 벗겨낸 가죽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등이 그려져 있다.(도판 9)─이러한 이미지는 다비트의 회화와 충격적인 상호텍스트를 이룬다. 이 패널은 또한 네로의 어머니 아그리피나를 산 채로 해부하는 장면을 묘사한 동시대의 이미지─<장미 이야기(roman de la rose)>의 네덜란드 필사본 중에 들어 있는 에피소드를 묘사한 세밀화(도판 10)─와도 비교된다.

[도판 9] ‘피부를 벗긴 인물’, 후안 발베르데 데 하무스코(Juan Valverde de Hamusco), (로마: Antonio Salamanca and Antonio Lafresii, 1556) 중 목판화.

[도판 9] ‘피부를 벗긴 인물’, 후안 발베르데 데 하무스코, <인간 신체 구조의 역사>(로마, 1556) 중 목판화.

[도판 10] ‘아그리피나의 해부를 지켜보는 네로’, 의 세밀화, 1500년경, 네덜란드. 영국국립도서관, 런던.

[도판 10] ‘아그리피나의 해부를 지켜보는 네로’, <장미 이야기(Roman de la Rose)>의 세밀화, 1500년경, 네덜란드. 영국국립도서관, 런던.

… <캄뷔세스>에서 가장 심란한 측면은 형리들의 매우 진지한 태도로서, 이는 다시금 해부학 삽화와 병치된다. 예를 들어 <아그리피나> 세밀화에서 해부를 집행하는 우두머리는 소매를 걷어 붙이고 열심히 일하고 있으며, 옆에서는 그 조수가 조심스레 칼을 쥐고 있다. 마찬가지로 다비트의 <캄뷔세스>의 형리들도 초연하고 사무적인 태도를 보인다. 신체 표면에 주의 깊게 선을 긋고 있는 이 전문가들은 오로지 자기가 맡은 일에만 전념하고 있다. 다만 그림 오른편에 시삼네스의 팔을 받치고 있는 어린 조수만이 예외로, 산란한 듯이 관람객 쪽을 바라보고 있다. 그림 속 인물의 눈길이 관람객의 시선과 마주치는 모티프는 성인 성녀의 순교 장면에서도 가끔씩 나타나는데(5장을 보라), 이것은 그림을 (1장에서 논의한) 일시적 정지의 이미지와 연결하는 테크닉이다. 그림 속의 장면에 관람객이 통합됨으로써 … 현대의 관람객들 역시 이미지를 눈으로 ‘접촉하고’ 안으로부터 경험하면서 이 그림과의 정서적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

서론에서 논의한 브로츠와프 십자가상이 분명히 보여 주듯이, 중세 후기 그리스도의 몸에 대해 감정 이입하는 관계는 그리스도의 피에 대한 신앙을 통해서 형성되었다. 그러나 다비트의 형벌 패널화에는 피가 거의 완벽하게 부재한 것이 인상적이다. 죄수의 몸에서 찾아볼 수 있는 피의 흔적이라고는 흉골과 허벅지를 따라 흘러내리는 몇 방울의 피와, 치아에 조그맣게 맺힌 피 한 방울(혹은 그냥 치아 하나가 빠진 구멍일 수도 있다)뿐이다. 형리 한 사람의 손가락 끝에서도 피가 조금씩 바닥으로 흘러 떨어진다. 어쩌면 수난 도상에서 피가 성체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피를 시삼네스의 몸과 연관 짓게 되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이미지에서 피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은 극적인 서스펜스를 높이기 위해 작가가 취한 전략일 수도 있다. 어느 시점부터 진짜로 피가 흐르기 시작할 것인가…죄수는 언제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피부가 완전히 벗겨졌을 때 사체는 어떤 모습이 될까? 작가는 이렇게 생명(움직임)이 정지한 장면을 묘사함으로써 일종의 ‘롤러코스터’의 미학─쾌락의 원천(서스펜스는 현대 공포 영화를 즐기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이자 불안의 원천이 되는 극적인 일시성─을 창출하고 있다.

[도판 11] 도판 2의 세부, 시삼네스의 처형을 구경하는 사람들.

[도판 11] 도판 2의 세부, 시삼네스의 처형을 구경하는 사람들.


…감상자의 반응에는 시삼네스의 몸 주변에 모여든 구경꾼들의 표정도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도판 11) 처형 집행인들과 매한가지인 그들의 금욕적인 몸짓은, 모든 본능적인 반응을 프레임 바깥의 관람객들을 향해 몰아내고 있다. 이는 이미지와의 정서적인 관계를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테크닉이다. 앞에서 언급한 네덜란드 필사본의 해부 묘사에서는 자기 어머니의 살이 절개되는 장면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 네로의 모습이 재현되어 있는데(도판 10), 이와 달리 이 그림에서 처형을 목격하는 시민들의 시선은 희생자의 몸을 무심히 지나치거나 아예 딴 곳을 쳐다보거나 혹은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도판 12] 도판 2의 세부, 작업 중인 형리들.

[도판 12] 도판 2의 세부, 작업 중인 형리들.

마찬가지로 형리들도 자기에게 개인적으로 할당된 일에만 집중하고 있는데 이는 신체를 그 구성 부분으로 조각조각 쪼개어 바라보는 태도이다.(도판 12) 앞서 언급했듯이 신체 절단을 바라보는 중세의 태도는 양가적이었다. 그리스도의 매장이나 성인의 순교라는 맥락에서는 이러한 관습에 열광했지만, 그 외 다른 맥락에서 절단된 신체와 마주치면 공포를 드러냈다. 마찬가지로 다비트의 그림에서 구경꾼들의 태도는 이 그림이 지닌 비체성과 숭고성의 양 극단을 내비치고 있다. 그들의 초연한 태도는 희생자를 비인간화하고, 아직은 살아 있는 통일체로서의 몸을 향한 자연스런 반응을 억누른다. 시삼네스 개인의 정체성이 새겨져 있던 표면이 제거됨으로써, 그의 몸은 정치적 삶이 박탈되고 적나라한 목숨으로 전락하는 과정에 놓여 있다. 그러나 구경꾼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것이 전하는 정의의 교훈을 숙고하는 것뿐이다. …

하지만 우리가 무리를 해서라도 (그럴 수 있다면) 살갗이 벗겨지는 육체 그 자체를 들여다보면, 그것은 여전히 의미를 담지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림 속의 구경꾼들의 시각에 저항하여 그들이 보지 않는 것을 보려면, 관점의 미세한 변화만으로도 충분하다. 우리는 시민들의 공허하고 무감동한 표정과 달리 고통으로 주름진 시삼네스의 얼굴을 관찰할 수 있다.(도판 7) 그의 일그러진 입에는 악문 이빨이 드러나 있고 긴장된 목에는 힘줄이 튀어 나와 있다(왼쪽 각막에 흰 점은 눈에 물기가 약간 비친 것 같다)…첫 번째 패널에서도 정의의 옥좌에서 끌어내려지는 시삼네스의 얼굴에는 불안해하는 표정이 역력히 드러난다. 이처럼 시각을 조금 이동하여 한 걸음만 비껴서 보아도 희생자인 시삼네스 자신은 관람자들의 신체에 공포의 반응을 아로새기며, 우리는 죄수의 공포를 목격할 수 있다.

그러나 애초의 맥락에서 다비트의 그림은 희생자와 동일시하기 위해 그려진 것이 아니다. 이 그림의 목적은 관람객들로 하여금 그림 속의 시민들(원래 이 사건을 목격한 관중들)과 동일시하도록 부추기는 것이다. 이 패널화를 과학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다비트는 구경꾼들의 얼굴 중 상당수를 다시 그려 넣거나 수정하였다. 아마 이 그림이 완성되던 당시에 재직 중이던 시의회 의원과 닮은 얼굴을 재현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 외에도 최신 유행에 맞추기 위해 꽃 장식, 아기 조각상, 고전풍의 원형 양각 부조 등의 모티프를 새로 추가하였다. 이런 변경된 요소들을 보면, 화가는 희생자와의 동일시보다는 구경꾼과의 동일시를─구경꾼 사이에 당시 실제 인물의 초상을 포함시킬 정도로─한층 더 중요하게 여겼음을 알 수 있다.

화가가 감상자를 그림 속의 구경꾼들과 동일선상에 놓으려 했음을 되새긴다면, 그림에 대한 반응의 계급적 성격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 그림은 15세기 후반 브뤼헤의 중산층 공민 계급이라는 매우 한정된 사회 집단을 염두에 두고 주문된 것이다. 초연함과 도덕적 우월성의 렌즈를 통해 작품을 보는 전통적 미술 비평과 유사하게, 이 그림은 ‘공민적 미학(burgerlijk aesthetic)’이라 할 만한 것을 체현하고 있다. ‘공민적 미학’이란 말하자면 엄정하고 무감동한 표현 모티프에 의한 재현 방식으로서, 본능적, 신체적 반응을 억제한다. 여기서 네덜란드 말인 ‘공민(公民, burgerlijk)’은 이 그림에 대한 반응의 계급적 성격─이 그림을 브뤼헤 시민들이 주문했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다. 또 이 단어는─이 말에 해당하는 독일어 단어도 그렇지만─여기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 ‘부르주아(Bourgeois)’보다도 교화되고 예의 바른 느낌을 전달한다…공민적 미학은 또한…보다 차갑고 소원하고 미학적인 감정을 수반한다. 이는 추하거나 조야한 것에 대해 방어적이며 결벽하다. 결벽성(fastidiousness)은 <캄뷔세스 왕의 재판>의 주된 특징이기도 하다. 이 그림은 처참한 육체에 참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고 배우라는’) 교훈적 진실에 대한 숙고를 환기시킴으로써 이데올로기적 메시지를 전달하도록 의도된 것이다.

[도판 13] ‘성 바르톨로메오의 순교’, 슈테판 로흐너,  중 한 패널, 1435년경, 목판에 혼합 재료. 슈테델 미술관, 프랑크푸르트.

[도판 13] ‘성 바르톨로메오의 순교’, 슈테판 로흐너, <사도들의 순교(Martyrdom of the Apostles)> 중 한 패널, 1435년경, 목판에 혼합 재료. 슈테델 미술관, 프랑크푸르트.

동시에─중세의 공민들을 포함한─일부 감상자들이, 교화적이고 초연하고 예의 바른 태도를 지녀야 한다는 요구에 저항하면서, 근대 비평가들이 지금껏 끈질기게 무시해 온 ‘고통 받는 육체’에 바로 초점을 맞추어 이 그림을 다른 방식으로 볼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예컨대 최소한 13세기 이후 종교 문헌의 필사본이나 패널화에는, 성 바르톨로메오가 살가죽이 벗겨져 순교하는 장면을 재현하는 뿌리 깊은 전통이 있어 왔다. 그 가장 인상적인 예는 15세기 슈테판 로흐너(Stefan Lochner)가 그린 <사도들의 순교> 제단화 중의 패널화에서 볼 수 있다. 여기서 바르톨로메오는 완전히 알몸이 된 채 한쪽 팔의 살가죽이 너덜하게 반쯤 벗겨져 있다. 눈에 잘 띄게 채색된 핏방울이 그의 등을 타고 흘러내린다.(도판13)…. 성인을 본받자는 교훈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바르톨로메오의 이미지는 현저히 ‘희생자와 동일시’하는 경향을 띤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로흐너의 패널화에서 바르톨로메오는 엄격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것 같지는 않다.) 종교 문필가들은 그들이 신앙하는 ‘고문 받고 고통 중에 있는 육체’가 되기를 갈망하여 ‘그리스도를 본받’으려는 ‘이미타시오 크리스티(imitatio Christi)’라는 급진적 관습에 참여하였다. 따라서 다비트가 이 작품을 제작하던 당시 기독교 신앙의 맥락에서는, 고통 받는 몸을 바라보고 그와 동일시하는 유서 깊은 전통이 존재하고 있었다.

… 고통 받는 육체를 바라보고 거기에 대해 감정 이입하며 참여하는 행위는, 이 육체가 특정한 이데올로기의 매개체로 변형되는 데 대한 저항으로서 작용한다. 따라서 고통 받는 몸의 이미지에 반응하는 관람객들은 역사의 요구에 저항한다. … 동시에 시삼네스의 신체적 고통과 관람객의 신체 사이에는 여전히 단절이 남아 있다. 이는 희생자의 고통 받는 신체가 실제로 우리의 신체가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지만, 화가가 죄수의 육체로부터 시민 정신과 법의 집행에 관한 교훈적 메시지(이는 관람객들을 과거 중세의 특정 시점으로 돌려놓는다)로 주의를 돌리기 위해 시각적 전략을 활용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그림은 감정을 이입하는, ‘초역사적’ 반응을 몰아내려고 노력하는 동시에 관람객들을 끌어들이려 시도한다. 우리가 보는 방식을 달리하여 이 그림의 중심에 있는 처참한 육체에 참여하기로 마음먹는다면, 우리는 머리털이 곤두서는 공포에 근접하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내 견해로는 이 작품이 궁극적으로 확립하고자 하는 것은 결벽증적이고, 육체로부터 분리되고, 자기로부터 거리를 두고, 초연한, 한마디로 말해 ‘공민적’ 반응이다.

 

  1. 예를 들어 Pa+cht, Early Netherlandish Painting, p.247에서는 시삼네스의 형벌에 대해 단순히 ‘메스꺼운 일’이라고만 언급하고 거기에 대해 보다 면밀히 질문하지 않은 채, 그의 분석을 형식적인 고찰에만 한정한다(‘인물 군상의 머리가 고전 부조 양식처럼 완벽히 일직선상에 배치되어 있다’는 둥, 살가죽이 벗겨진 몸이 ‘사선으로 후퇴한 공간’에 놓여 있다는 둥)….이는 그림이 그려진 표면과 그것이 감상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으로부터 딴 곳으로 주의를 돌리는 방법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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