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된 생명: 중세 문화의 고통, 쾌락, 형벌(2)

[도판 1] ‘매달린 사람’, 비스콘티-스포르자(Visconti-Sforza) 타로키(타로) 카드, 1445년경. 뉴욕 피어몬트 모건 도서관.

[도판 1] ‘매달린 사람’, 비스콘티-스포르자(Visconti-Sforza) 타로키(타로) 카드, 1445년경. 뉴욕 피어몬트 모건 도서관.

1장 하늘과 땅 사이에

적을 매다는 세련된 기술

사람을 매다는 이미지를 묘사한 또 다른 형벌 도상 장르의 주제는 바로 조롱이었다. ‘피투레 인파만티(Pitture infamanti)’라고 하는 이것은 남에게 망신을 주기 위해 그린 초상화로서, 로마법의 ‘파마(fama)’와 ‘인파마(infama)’의 고대 교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런 그림들은 13~16세기 북이탈리아 도시의 주요 재판소 벽에 흔히 그려져 있었으며 그 주된 기능은 법정을 모독한 배신자나 채무자를 겨냥해 일종의 연행적인 모욕을 주는 것이었다. ‘피투레 인파만티’의 희생자들을 그림 속에서 죽이는 경우는 드물었고, 대신에 다양한 모욕적인 자세─주로 한쪽 발이 묶여 거꾸로 매달린 자세─를 취한 모습으로 그리곤 했다. 이탈리아의 비방용 초상화는 문헌 기록과 스케치로만 전해지며, 공개적으로 제작된 그림이 현재까지 남아 있지는 않다. 하지만 이는 타로 카드 안에 있는 ‘매달린 사람’의 아이콘과 비교할 수 있다. 가장 오래된 타로 카드는 1440년경 북이탈리아에서 제작되었는데, 이것이 아마도 당시 이 지역에 널리 퍼져 있던 비방용 초상화를 간접적으로 보여 주는 최고(最古)의 유물일 것이다(도판 1).

‘피투레 인파만티’의 제작과 감상에 중요한 역할을 한 요소는 주로 계급 구분이었다. 여기에 그려진 대상은 주로 상류층 남성들로서(여성은 전혀 그려지지 않았다) 말하자면 손상될 것을 염려할 만한 명예를 갖춘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모욕은,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참수형을 받을 특권이 허락되는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교수형이라는 모욕적인 처벌 방식과 연관시킴으로써 유효해지는 것이었다. 교수형과 성인(聖人)이 연관된 유일한 사례는 성 히에로니무스가 억울한 판결로 교수대에 매달린 사람을 구해 준 기적 이야기(도판 2) 하나뿐이며, 그나마 성인 자신이 목 매달린 모습을 재현한 사례는 매우 드물다. […] 종교적인 맥락에서 교수형은 가장 치욕스런 죽음, 즉 유다의 자살과 결부되어 있었다. 따라서 ‘피투레 인파만티’는 유복한 희생자의 명예를 훼손하기 위해, 교수형과 치욕과 사회적 망신이 연관되어 있다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시각적으로 구현함으로써 작동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미지의 이면에는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 그중에서도 거꾸로 매달린다는 모티프의 의미는 무엇일까?

[도판 2] 피에트로 페루지노(Pietro Perugino), , 15세기 후반, 제단 패널에 채색, 파리 루브르 박물관.

[도판 2] 피에트로 페루지노(Pietro Perugino), <성 히에로니무스가 두 교수형당한 사람을 구하다>, 15세기 후반, 제단 패널에 채색, 파리 루브르 박물관.

[도판 3] ‘여우 레이너드를 목 매다는 거위들’, 15세기, 장의자 옆면 조각, 성 미카엘 교회, 브렌트 놀, 섬머셋.

[도판 3] ‘여우 레이너드를 목 매다는 거위들’, 15세기, 장의자 옆면 조각, 성 미카엘 교회, 브렌트 놀, 섬머셋.

가장 기본적인 차원에서, 거꾸로 매달린 모습의 재현은 ‘문두스 인베르수스(mundus inversus, 거꾸로 뒤집힌 세상)라는 개념을 전달한다. 그리고 상징적 전도(顚倒)의 모티프는 코미디의 주된 원리 중 하나다. 인류학자들은 전도를 ‘안전밸브(Ventilsitten)’, 즉 ‘김을 빼서 위험성을 중화하는’ 수단으로 이해하곤 한다. 즉 상징적 전도는 우리를 가역적인 과정에 참여시킴으로써 근원적 형태의 놀이를 이끌어 내며, 새로운 개념과 새로운 가능성, 새로운 역할을 간접적으로 실험해 볼 수 있는 공간을 창출한다는 것이다. (도판 3)은 15세기 후반~16세기 초반 영국 서머셋의 브렌트 놀(Breant Knoll)에 있는 한 교회의 장의자 옆면에 조각된 작품으로, 한 무리의 거위들이 여우 레이너드를 교수대에 매달아 끌어올리는 우화 속의 한 장면을 묘사한 것인데, 자연 질서의 일시적 전복에 근거한 장난스럽고 희극적인 측면을 환기하고 있다. 이 우화 속에서 여우 레이너드는 강간, 살인 등의 죄목으로 왕 앞에 불려가 재판을 받고 법정에서 교수형을 선고받는다. 원래의 텍스트에서 여우는 성지순례를 떠난다는 조건으로 결국 풀려나게 되지만, 의자 측면에 조각된 이미지에서는 끈에 목이 졸려 매달려 있다.

[…] 뒤죽박죽으로 본말이 전도된 세계의 은유는 북유럽에서 이탈리아의 비방 회화와 가장 유사한 장르인 독일의 ‘샨트빌더[Schandbilder, 망신을 주는 그림이라는 뜻─옮긴이]’에서도 중요하다. 이러한 이미지는 묘사된 사람을 망신 주기 위해, 종이 또는 양피지에 그려서 조롱하는 글귀를 덧붙여(이럴 경우에는 셸트브리페[Scheltbriefe, 비난하는 편지라는 뜻─옮긴이]라고 한다) 피해자의 집 대문이나 공공장소에 게시했다. ‘샨트빌더’는 국가 기관이 아니라 개인들 사이에서 사적으로 널리 행해졌다는 점에서 ‘피투레 인파만티’와 다르다(이탈리아에서는 비방 회화를 개인적으로 그려서 게시하는 행위를 법으로 금지한 경우가 많았다). 그렇긴 해도 그것이 기능한 방식은 아주 비슷했다. 비행을 저지른 범법자─주로 채무자─를 모욕적인 자세로 그려 게시함으로써, ‘법정 바깥의’ 처벌 효과를 노리고 상대로 하여금 배상금을 지불하도록 자극하려는 의도였다.

일찍이 오토 후프(Otto Hupp)는 이 장르에 대해 상세히 연구하여, 1379~1593년 사이에 제작된 총 39점의 ‘샨트빌더’와 ‘셸트브리페’의 목록을 작성하였다(이 중 1500년 이전에 제작된 것은 15점이다). 최근에는 연구가 더욱 진척되어 당시 독일 북부를 중심으로 제작된 비방 회화가 100여 점까지 발견되었다. 가장 흔한 비방 양식은, 범법자가 암퇘지나 암나귀나 암캐의 항문에 자기 가문의 인장을 찍고 있는─그래서 결국 가문에 똥칠을 하게 되는─광경을 재현한 것이었다. 그러나 다리가 밧줄에 묶인 채 거꾸로 매달린 모습으로 묘사되는 경우도 흔했다. 1438년 뢰벤슈타인의 요한이 헤세의 루드비히 백작을 대상으로 제작한 ‘셸트브리페‘(도판4)에서, 채무자는 멋진 예복을 입은 채 거꾸로 매달려 까마귀가 발을 쪼아 먹고 있고(관습상으로는…눈을 쪼아 먹는 것이 보통이므로 이는 상징적 전도를 드러낸다), 그 옆에는 그의 문장(紋章)이 역시 거꾸로 매달려 있다. 그림 위에 덧붙인 문장에 보면 이 그림을 그리게 된 경위─백작의 성에서 수프 한 사발을 놓고 싸움 끝에 충동질되었다는─를 설명하고 있다. 이어서 유다를 지저분하게 빗대어, 불만의 원인이 돈과 관련한 분쟁임을 넌지시 암시하고 있다. 이 글에서 요한은, “유다가 스스로 목매달았을 때 불었던 바람이 그의 눈과 귀에 불어 닥쳐서 그는 앞으로 다시는 명예를 보지도 듣지도 못하게 되리라”라고 선언한다. 이러한 이미지의 실용적인 목적은 분명하다.

[도판 4] 뢰벤슈타인의 요한(Johann of Lo+wenstein)이 헤센의 루드비히(Ludwig of Hesse)에 대해 쓴 셸트브리페(‘비방문’), 1438년 11월 2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시사(市史)연구소.

[도판 4] 뢰벤슈타인의 요한이 헤센의 루드비히에 대해 쓴 셸트브리페(‘비방문’), 1438년 11월 2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시사(市史)연구소.

…이상이 우리가 그의 모욕적인 그림을 그의 문장과 함께 걸어 두는 이유이다. 우리는 그와 그의 가족이 앞서 기술한 식으로 자행한 부당한 행위에 대해서 존경할 만한 이들이 인정할 만큼 베상할 때까지 이 그림을 계속 걸어 둘 것이다. 그리고 그가 매달린 그림을 보고 자비심을 구하는 자들에게 이 그림에 손대지 말 것을 청하는 바이다.

1490년 레겐스부르크의 두 유대인인 사이드로와 아이작 스트라우빈저가 한스 주드만을 상대로 제작한 ‘샨트빌더’에서도 희생자는 마찬가지로 기사 제복을 입은 채로 발이 묶여 거꾸로 매달려, 악마가 그의 머리 주위를 몽둥이로 때리고 있다.(도판 5)

[도판 5] 사이드로와 아이작 스트라우빈저(Say+dro and Isaac Straubinger)가 한스 주드만(Hans Judmann)을 상대로 그린 샨트빌더(Schandbilder ‘비방화’), 1490년, 독일. 17세기에 제작된 사본. 바이에른 주립문서보관소, 뮌헨.

[도판 5] 사이드로와 아이작 스트라우빈저가 한스 주드만을 상대로 그린 샨트빌더(‘비방화’), 1490년, 독일. 17세기에 제작된 사본. 바이에른 주립문서보관소, 뮌헨.

이들 대부분의 사례는 […] 직접적 사형 행위를 암시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독일의 ‘샨트빌더’에서는 이따금 잘못을 저지른 당사자를 전통적인 방식으로 목이 매달리거나, 수레바퀴에 묶여 사지가 부러지거나 심지어는 기둥에 못 박힌 모습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이 거꾸로 매달린 이미지는 통상적인 교수형의 관습을 연상시키고자 의도한 것은 아니다. 이는 그보다는 당시에 실제로 가끔 시행되었던 유사한 형벌─소위 ‘유대식 처형(Jewish execution)’이라고 하는 것으로, 여기서 유대인 범죄자는 사나운 개들과 나란히 산 채로 거꾸로(어떤 경우는 한 발로) 매달린다─과 비교할 수 있다. 이러한 처형 의식은 중세 독일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으며 멀리는 스페인에도 기록된 사례가 있지만, 이 관습을 수록한 현존하는 법령집은 중세 거의 끝 무렵 혹은 그 이후에 쓰인 것이다. 유대식 처형에 대한 최초의 정의는 16세기 초 울리히 탱글러의 <일반인의 귀감>에 등장하는데, 여기서는 이것을 ‘유대교의 이단’을 완강하게 고집하는 자에게 부과되는 속죄 행위라고 해설하고 있다. 한편 이 형벌에 대한 가장 상세한 묘사는 17세기 후반 또는 18세기 초반 스위스 글라루스 주(州)의 법령집에 기록되어 있다(여기서 제시하는 견해도 앞의 문헌과 일치한다). 이 법령집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그는 절도범으로서 밧줄이나 사슬로 발을 묶어서 특별히 세운 교수대에 매달되, 그 양 옆에 사납고 으르렁거리는 개를 함께 매달 것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 풀이나 목초가 그 아래에서 자랄 수 있을 정도로 매우 높이 매달아, 그는 땅에서 멀리 떨어져 개들과 새들과 허공에 내맡겨질 것이다. 그리고 판사와 군중과 경비병은 교수대 주위에 모여 그가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그것을 지켜볼 것이다.

이 인용문은 […] 사람을 매다는 상징의 중요한 측면, 즉 정지(매달림)─지연된 죽음─의 모티프를 전하고 있다. 형벌 받는 유대인의 운명은 말 그대로 ‘하늘과 땅 사이에’ 매달려 있다.

베네치아에서 바젤로 파견된 사절인 파두아의 안드레아 가타로가 쓴 일기는 이 관습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 중 하나이다. 이 일기에는 1434년 두 독일계 유대인이 절도범으로 체포되어, 기독교로 개종하도록 고문당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결국 둘 중 하나는 개종하여 참수되었고, 나머지 하나는 ‘개와 함께 거꾸로 매달리는 형이 선고’되었다. 그는 밧줄로 교수대 위에 끌어올려져 거기 한동안 매달려 있다가 ‘그의 예언자들이 자신을 구원해 주지 않음을’ 깨닫고 마침내 동정녀 마리아를 외치며 도움을 청했다. 그 순간 개 짖는 소리가 누그러졌고 죄수는 밑에 서 있는 수도사를 향해 “기독교도가 되겠소!” 하고 절규했다. 비방용 도상과 유사하게, 여기서 묘사한 의식에도 상징적 전도가 들어 있다. 즉 거꾸로 매달리는 것은 유대인의 명예에 대한 모욕을 나타낸다. 동시에, 유대인의 개종을 재현한 이야기들이 그렇듯이, 이 이야기 또한 유대인의 완고함에 대한 반유대적 판타지를 지속시킨다. 즉 범법자에게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무시무시한 운명에 대해 숙고할 시간이 주어지지만 그는 개종하지 않는다. (방금 소개한 사례에서, 매달린 유대인은 결국 사면되었다.) 교수대 위의 전도를 통해서 이 유대인이 인간과 짐승 사이의 분리라는 또 다른 형태의 상징적 전도와 융합되었다는 것 역시 의미심장하다. 에스더 코헨에 따르면, 거꾸로 매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인간을 해친 짐승, 그중에서도 특히 돼지에게 행한 형벌이었다고 한다(유대인은 돼지고기를 금지하는 레위기의 구절을 통해서 돼지와 결부된다). 그래서 방금 인용한 사례에서 절도범들은 ‘짐승처럼 죽지 않으려면 기독교도로 개종하라고 계속해서 강요당했던’ 것이다. 그 유대인 희생자는 유다처럼 기독교도로서 합당한 사회적 죽음을 받아들이거나 또는 비천하고 짐승 같은 종말을 맞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문지방 위의 상황에 처했던 것이다.

 

[도판 6] ‘유대식 처형’, (스트라스부르크: Matthias Hupfuff, 1512-15년경).

[도판 6] ‘유대식 처형’, <유대인에 의한 성모 성화의 모독 및 수치>(스트라스부르크: Matthias Hupfuff, 1512-15년경).

유대식 처형을 시각적으로 묘사한 예는 매우 드문데, 그중 하나가 14세기 초 에노(Hainaut, 지금의 벨기에) 지방 캠브론의 시토 수도원에서 동정녀의 이미지를 모독했다는 죄목으로 유대인들이 처형된 사건을 재현한 대형 팸플릿이다. 16세기 초 스트라스부르그에서 인쇄된 이 팸플릿에는 그중 주모자였던 윌리엄이 받은 일련의 시죄(試罪) 광경이 목판화로 묘사되어 있다. 그는 자백을 이끌어내기 위한 고문과 결투 재판을 거친 끝에, 결국 교수대와 끌려와 거꾸로 매단 채 그 밑에 불을 지피고 양 옆에 개를 매다는 형벌을 받았다(도판 6). 거기에 앞서 등장하는 이미지에는 윌리엄이 칼을 꽂은 성모 마리아의 그림이 피를 흘리는 기적이 묘사되어 있다. 몽(Mons) 시 부근의 한 교회에 있는, 역시 성상을 훼손해 처벌 받는 유대인을 그린 그림도 이 목판화와 놀랄 만큼 유사하다. (지옥불 또는 교회법에 따른 가장 가혹한 형벌 방식을 가리키는) 불의 모티프는 영혼의 구원과 영원한 천벌 사이에 매달려 정지한 유대인의 상황을 전달한다. ‘샨트빌더’처럼 이 목판화에서도 희생자의 전도된 상태를 강조하기 위해 시체를 쪼려고 달려드는 까마귀의 도상을 이용하고 있다. ‘사이에 있음’의 모티프는 앞서 인용한 대로 유대식 형벌에 대한 후대의 법적 정의에도 들어가 있지만, 이 이미지에 덧붙여진 텍스트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 구절에 따르면, 이 유대인은 ‘두 커다란 개를 양 옆에 두고, 거꾸로 매달린 채 땅에서 유리되어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이 글은 계속해서 이 형벌이 ‘날이면 날마다 혐오스러운 범죄를 저르고 우리의 종교를 욕되게 하는 모든 유대인들을 처벌하는’ 본보기이자 ‘속죄’의 방법이라고 말하고 있다.

도판 4, 5의 ‘샨트빌더’와 유대식 처형의 도상 사이에는 분명한 유사점이 있다. ‘샨트빌더’의 목적은 자살자에게 가해지는 사후 처벌과 유사하게, 현실의 법정에서 실망스럽게도 형벌이 유보된 자를 대상으로 모욕을 주려는 것이다. 유대인 범죄자의 처형처럼, 거꾸로 매다는 형벌은 사회적 지위와 운명이 말 그대로 공중에 높이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처벌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물론 ‘샨트빌더’는 재현물을 통해 가상의 처벌을 내리는 것이고, 유대식 처형은 실제로 집행된 증거가 있다는 점에서 둘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둘 다 불안정한 정지(매달림)의 논리에 기대고 있다는 점은, ‘샨트빌더’와 반유대주의의 틀이 어떤 차원에서 상호 교감하고 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예컨대 비방 회화를 제작한 사람들이 비유대인을 모욕하기 위한 재현물을 만들면서 사람을 짐승과 동일시하는 반유대주의의 언어를 직접적으로 갖다 썼을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추측은 유대식 처형이 비방 회화의 도상적 ‘전거’가 되었다고 가정하고 있지만 그렇게 분명한 계보를 확립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최소한 유대식 처형·짐승 처형의 시각적 재현과 실제 집행은 독일의 ‘샨트빌더’를 해석하는 적절한 틀을 제공해 줄 수 있다. 즉 유대인이라는 모욕과 거꾸로 매달리는 형벌을 결부시켜 그림에 묘사된 사람의 굴욕을 배가하는 효과를 노렸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중세 독일에서 거꾸로 매달린 사람의 이미지가 불러일으켰던 심상은 어떤 면에서는 ‘피투레 인파만티’에서 연상된 것과는 달랐을 가능성이 있다. 나는 독일의 ‘샨트빌더’를 보았던 사람들이 처벌 받는 유대인의 원형적 이미지를 통해 이 도상을 이해했다고 제시하고자 한다.

[도판 7] 브루더 글라드벡(Bru+der Gladbeck)이 프리드리히 폰 니어하우젠(Friedrich von Niehausen)과 그의 보증인에게 보낸 슈만브리페(Schma+nbrief, ‘비방문’), 1525-6, 독일. 헤센 주립문서보관소, 마르부르크.

[도판 7] 브루더 글라드벡이 프리드리히 폰 니어하우젠과 그의 보증인에게 보낸 슈만브리페(‘비방문’), 1525-6, 독일. 헤센 주립문서보관소, 마르부르크.

‘샨트빌더’의 반유대적 배경은 또한 채무자가 자신의 인장을 암컷 짐승의 항문에 찍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셸트브리페‘(도판 7)와, 유대인이 암퇘지의 젖을 빨고 그 배설물을 먹는 광경을 재현한 그림에서도 드러난다. 특히 후자는 13세기부터 독일어 사용권에서 유행한 것으로서, ‘유덴자우[Judensau, ‘유대 암퇘지’라는 뜻─옮긴이]’라는 도상 장르를 구축하고 있다(도판 8). 희생자를 짖어 대는 두 마리 개와 나란히 매달아 놓는 유대식 처형과 유사하게, ‘유덴자우’에서도 유대인은 ‘우리 같은’ 사람이 아니라 젖 먹는 새끼 돼지처럼 이질적인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 즉 사람을 짐승과 동일시하고 배설물로 더럽히는 언어를 통해 한편으로는 신분이 높은 비유대인의 명예를 더럽히고, 한편으로는 유대인을 가장 혐오스런 짐승과 결부시키려(도판 7의 ‘유덴자우’ 이미지에 쓰인 글귀 중 하나는 “그래서 우리는 구운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의도했음을 알 수 있다.

[도판 8] , 15세기 독일의 판목으로 1700년경 제작된 목판화.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역사박물관.

[도판 8] <유덴사우(Judensau)>, 15세기 독일의 판목으로 1700년경 제작된 목판화.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역사박물관.

따라서 똑같은 비방용 도상처럼 보이는 것들도 전달하는 메시지는 서로 다르며, 시대적·지역적 특성에 따라 내러티브가 다르게 착색된다. 이탈리아와 독일의 비방 초상 간의 가장 명백한 차이는 그 제도적 위상에 있다. 이탈리아에서 ‘피투레 인파만티’는 일반적으로 공권력의 도구였다. 묘사된 개인은 거의 예외 없이 부유한 귀족이었고 그 초상화는 지위나 혈통과 관계된 이슈와 결부되어 있었다. 독일의 ‘샨트빌더’의 ‘희생자’들도 비슷하게 유복한 계층이지만 이탈리아의 경우와 달리 사적 개인과의 분쟁에 휘말린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중세 독일에서 금전적 부채로 야기된 사회적 긴장이 일부분 반유대적 분위기를 띤 불명예스러운 이미지를 통해 표현된 측면도 있을 것이다. 유대식 처형을 묘사한 이미지(도판 19)와 비방 초상화 사이의 유사성이 ‘피투레 인파만티’를 보는 이탈리아 사람들에게도 유효한 해석틀이었다고 할 수는 없다. 이탈리아의 맥락에서 비방 회화는 상류 계층에서 유행한 특정 초상화 장르(‘우오미니 파모시’)의 전도를 암시함으로써 잠재적 효력을 발휘하였다. 한편 독일어권의 비방 회화는, 인간성을 박탈하는 반유대적 정서(명예가 훼손된 개인이 유대인들처럼 수성[獸性]을 띠게 된다는 생각)를 불러일으킴으로써 그 효력이 작용하였다. 물론, 독일의 비방 회화 중에서도 그림을 교사한 사람 자신이 유대인인 경우가─한스 주드만을 그린 샨트빌더(도판 5)─하나 있기는 하다. 아마도 이 경우는,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기독교도가 유대인에게 가하는 모욕을 거꾸로 기독교도에게 되돌려 주는 공격 효과를 노렸을 것이다. 형세의 이러한 역전은 실로 전복적인 암시를 띠지만, 이러한 전략이 행해진 보다 큰 맥락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전도의 은유는 유대식 처형의 상징적 언어에서 큰 몫을 차지했을 뿐 아니라, 중세 후기의 수많은 신성 모독 이야기에서도 중요한 요소였다. 이러한 이야기에서 유대인들은 성체를 훼손하면서 성찬식의 관습을 뒤집고 흉내 낸다고 여겨졌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유대인들을 향한 실제 폭력의 광풍을 선동하기도 했음을 우리는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는 중세 유럽이 사람을 매다는 도상이라는 공통의 언어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람을 매다는 하나의 이미지가 전달하는 여러 특수한 메시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중세의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 반유대주의의 언어와 모욕의 언어 사이의 상호작용은, 불명예와 유대인의 정체성과 동물성을 서로 결부시켜서 실제로 유대인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한 편견의 악순환을 창출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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